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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포트 Jan 04. 2024

내 멋대로 좀 살아 볼란다.


제 멋대로 사는 사람

평일 대낮에 슬리퍼를 찍찍 끌고 동네를 쏘다닌다. 타닥타닥- 규칙적으로 울리는 슬리퍼 밑창 긁는 소리에 리듬을 타면서 걷다 보면 이따금씩 어딘가에서 살랑~하고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덕에 기분이 한 층 더 좋아지는 것도 이제는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지금 내 삶은 정해진 것이 별로 없다. 정해진 드레스 코드는 물론이거니와 하루를 보내는 장소와 공간도 제 멋대로다. 삶의 경계도 흐릿한 듯하다. 특히 '평일'과 '주말'을 나누는 일은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렇게 정해진 바 없이 그저 나의 흐름대로 나아가는 것 만이 내 삶의 규칙이고 방식이다.


그렇다. 나는 바로 백수.


아니, 백숙.


아니, 백수의 모습을 한 프리랜서다.







내부에서 외부로


내가 처음부터 프리랜서였던 것은 아니다.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대학 생활을 제외한 내 20대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구직과 커리어에 바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회사에 진심인 인간이었다. 하지만 뭐가 그리도 문제였을까.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점점 회색으로 변할 때쯤, 사직서에 신명 나게 사인을 휘갈기는 내 자신을 마주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퇴사자였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다양하지만 조직 생활이 안 맞네 사람이 힘드네 하는 소리는 이제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나의 길이 아니었네 쯤으로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보다 나는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자꾸만 내 안에 무엇인가 갇혀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일상생활에 휩쓸리듯 살아가다가도 이 무언가는 이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 여기 있어"하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왔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지금도 확실히 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당시 내가 살던 삶을 계속 살았더라면 이게 무엇인지 평생 짐작도 못한 채로 묻어둘 것임이 분명했다.


그로부터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찾으려 하는 것이 글을 쓰는 것 그 자체이던 어떠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던 그걸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고, 그것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나는 무언가를 기록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 년 하고도 육개월이 되는 동안 가족, 친구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진 곳에서 홀로 지냈다. 정말 말 그대로 홀로 지냈다. 굳이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러 타지로 출타를 하지 않는 이상 한 달에 25일은 오롯이 홀로 지냈다. 유일한 사회생활이라면 두세 달에 한 번씩 참여하는 독서 클럽이 다였다. 이토록 철저히 혼자인 생활을 유지해야만 했던 이유는, (장은연 작가님께서 책에 언급하신 말씀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어느 정도의 '자기 구심점'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나는 타인의 영향력에 아주 취약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와 사회가 좋은 것이라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심연에 갇혀있던 나만의 그 무언가를 뭍으로 끌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내 두 다리로 굳건히 뿌리내리고, 나만의 방향으로 남은 생을 향해 자라나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숲 속을 산책하고, 명상을 하고, 안 하던 운동도 시작하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나에게도 무언가가 피어날 수 있는 숨구멍을 주려했던 것이다.


모든 것은 내부에서 외부로 나아가야 한다. 외부로부터 속을 채우려고만 한다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필요로 했던 것 대신 커다란 공허함만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마치 외로움처럼 말이다. 아무리 주변에 사람을 많이 두어 빈 마음을 채우려 한들 그것이 채워질 리 만무한 것처럼. 결국엔 혼자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 계속 찾아오게 마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외부로부터 나에게 투영된 욕망을 따라가는 대신 내 속에서 피어오르는 그 무언가를 쫒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의심과 좌절과 불안에 잠식될지라도 계속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고 한다. 그렇게 나아가는 나의 모습이 프리랜서로 보여도 좋고, 백수로 보여도 좋다. (물론 백숙으로 보이면 좀 곤란하다.)








‘내 멋’대로 살기 위해 ‘나만의 멋’을 찾아가는 여정


내 글은 내부로부터 외부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디뎌 가는 나의 여정기이다. 바쁘게 생계를 꾸려 나가는 와중에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일상을 휘갈긴 기록장이다. 자꾸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깨닫고 앞으로 나가는 성장기이다. 어쩌면 내 글은 그 모습이 뭉툭하고 말하려는 주제도 뭉툭하고, 모든 것이 뭉툭하고 또 뭉툭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세상에는 뾰족한 것보다 뭉툭한 것이 더 많다.

뾰족한 것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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