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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만난 사람들(2) - 사진 찍어 준다는 자

by 모카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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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어 준다는 자


'사진 찍어달라던 자'를 피해 도망치듯 빠져나와 세미냑 비치의 출구를 찾으면서 나는 20대 때 했던 여행과 지금의 여행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가 얼마나 냉소적으로 변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불과 몇 년 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모습, 사람을 과도하게 경계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 친구는 그저 대화 상대가 필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이루는 반쪽,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어머니의 영원한 부재가 낳은 가슴속 빈 공간을, 그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고백은, 털어놓을 대상이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어야만 더 솔직해지는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후회보다는 조금 가벼운 모종의 감정을 느끼면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저 멀리 한 외국인 무리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보니 네 명 정도 되었고, 인종도 나이대도 다양했다. 나는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아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청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걸어오는 모습이 멋져서 그런데 네 사진 한 번만 찍어도 될까?'


엥? 이건 또 뭐람. 나는 아무 옷이나 걸치고 바닷바람에 찌들어 짠내 풀풀 풍기는 내 모습을 멋있다고 하는 것도 의아했지만, 몇 분 전만 해도 내 카메라로 낯선 사람의 사진을 찍어주던 상황에서, 이제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내 사진을 찍혀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 참 웃겼다. 내가 어쩔 줄 몰라서 우물쭈물하니 그는 잽싸게 말을 바꿔 ‘그럼 네 폰으로 찍어 줄게’라고 한다. 나는 마침 나의 무정함에 대해 후회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터였고, 안 그래도 혼자 하는 여행이라 내 사진 한 장 없던 게 아쉬웠던 찰나였기에 내 고질병인 (사람에 대한) 의심병을 잠시 접어두고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네가 정 원한다면’


그러자 청년은 나에게 '이런 포즈를 해봐, 저런 포즈를 해봐', ' 저 멀리서 여기로 한번 걸어와 봐'라고 잘도 지시하면서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뽐냈다. 몇 분 전 내가 인도네시아 친구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계속되는 셔터질에 내가 점점 부끄러워 하자, 그 무리에 있던 한 친구가 구원의 손길을 보내왔다. 그녀는 ‘그럼 나랑 같이 찍자! 나는 일본 사람이야. 일본 사람들은 샤이해. 그래도 너랑 사진을 같이 찍어줄 게'라고 말하며 나의 민망함을 덜어주었다. 나는 속으로 참 배려심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사진 결과물


그 무리의 친구들은 좋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젊음의 싱그러움이 느껴졌고, 낯선 사람과도 금세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만큼 친화력이 좋았다. 알고 보니 무리 중 두 명은 호주에서 온 커플이었는데, 나머지 둘과는 오늘 세미냑 비치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고 했다.

한바탕 사진 소동이 끝나고 나는 이들과 잠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별의별 이야기가 오고 갔다. 자기네 나라에서 신기한 동물을 봤던 일, 기억에 남는 발리 여행지, 발리에서 본 원숭이 이야기 등등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은 이야기들이 신나게 오고 갔다. 나는 옆에서 조금 맞장구를 쳐주며 자리를 지키다가 호주 커플이 해온 저녁식사 제안에 수락했고, 가벼운 맥주와 피자를 먹으며 그날 하루를 마무리 했다. 불과 여행 이틑날에 생긴 일이었다. 나는 앞으로 또 얼마나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에필로그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11시쯤 '띵-'하고 문자 메시지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세미냑 비치에서 내 사진을 찍어 준 청년이었다. '우리 oo클럽으로 가고 있는데 올래?' 살짝 솔깃하기도 했지만, 늦기도 늦었고 오늘 처음 만난 친구들이 밤에 나오라 해서 나갔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터였다.(의심병 또 도짐) 나는 스리슬쩍 그의 문자를 무시하고 다음날 아침에 '미안, 나 늙은이라 일찍 잤어. 미안'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그 후 자기네 풀장에 놀러 오라는 그의 문자를 한 번 더 거절했다. 이날 이후 나는 이제 다시는 20대의 무모한 여행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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