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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명상 수업

발리 최고의 명상 센터

by 모카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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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 오기 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발리에서 실컷 요가도 하고 명상도 할 것이라 큰소리를 떵떵 쳤다. 발리 도착하고 나서는 여행하면서 만난 친구들에게는 명상 수업을 받으러 우붓으로 갈 거라고 떠들어 댔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언행이 무색하게도, 나는 발리에 도착하고 난 뒤 며칠 동안이나 요가니 명상이니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노트북 안에 작업해야 할 파일이 한가득 쌓여 있던 탓도 있었지만, 막상 원데이 클래스에 신청하려고 하니 왠지 모를 저항감이 들었었다(아니면 그냥 귀찮았던 걸까). 그렇게 발리에 도착하고 나서도 며칠 동안은 마인드풀과는 거리가 먼 여행자로서 시간을 보냈다.


발리 여행 3일차에 나는 드디어 우붓으로 갔다. 우붓은 영적인 도시로 잘 알려져있다. medicine(약)이라는 뜻을 지닌 우붓은 그 이름 답게 사시사철이 푸르른 생명력으로 가득해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치유해 주는 어떠한 신비로운 힘을 지녔다고 했다. 미리 이런 이야기를 듣고 갔던 탓인지, 우붓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왠지 색다른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기대했던 것도 같다. 동시에 우붓에서는 꼭 요가나 명상 클래스를 수강하리라 다짐했다.



명상하기 좋은 곳


나는 발리에 오기 몇 달 전, 어느 유튜버가 추천한 홈스테이 숙소를 미리 예약했더랬다. 세미냑에서 택시로 2시간에 걸쳐 그 숙소에 도착하니, 유튜버가 이 숙소를 추천해 준 이유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숙소 입구를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마치 새로운 세계에 입성하는 포털을 통과한 듯이 바깥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숙소에는 마당이 있었다. 마당 중앙에는 평상이 하나 있었는데 이 평상을 기준으로 2층짜리 집들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곳의 잔디는 푸르렀고, 숙소 입구에 심어진 나무는 이름 모를 꽃을 피우고 있었으며, 처마에는 종 같은 것이 달려 바람에 속절없이 몸을 흔들며 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내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에 홀랑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평화롭고 신비로운 숙소의 분위기. 나는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전장에서 피터지게 싸운 뒤 안전하고 평화로운 마을로 들어선 듯한 기분이었다(숙소 밖 옆집은 공사 중인 데다가 오토바이의 매연으로 뒤덮여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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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밖 풍경 /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 / 숙소 입구



그 집에 묵은지 이틀째 되는 날, 귀가길에 사테를 사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와 함께 끼니를 떼우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내 앞으로 지나가셨다. 나는 모른척 하기 민망해서 내가 먼저 스몰토크를 시전했으나.. 어쩌다 보니 대화가 1시간 동안 이어졌다. 본이 아니게 헤비토크가 된 것이다. 주인 아저씨는 (좋은 의미로) 참 독특하셨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신데 코로나 시기 때 손님도 없고 할 일이 없어 마당 조경을 직접 설계하고 가꾸셨다고 했다. 마당 조경은 물론 직접 그리신 그림도 정말 아름다웠기에, 예술적 감각이 여간 뛰어난 분이 아니셨다. 게다가 아저씨는 우리나라에서 소위 말하는 '신기'같은 것이 있는 사람이었다. 조상신 영혼이 오고 가는 것을 직접 느낀다고 말씀하셨으니까(실제로 대화 도중에 무언가를 느꼈다 하셔서 소름이 돋았다). 아마 무당과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무속신앙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편견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저씨의 말씀이 꽤 흥미로웠다.


KakaoTalk_20250305_162357168_03.jpg 주인 아저씨와 대화를 하면서 먹었던 사테와 맥주


한참 헤비토크를 이어가다가 나는 문득 우붓까지 당도하게 된 본분(=명상)이 생각났다. 왠지 주인 아저씨라면 명상에 익숙한 분이실 것 같았고(알고보니 실제로 꾸준히 수련을 하시는 분이셨다), 이 지역에 오래 사셨으니 좋은 명상 센터를 알고 계실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뜬금없는 질문인 걸 알면서도 아저씨께 주변에 괜찮은 명상센터를 아냐고, 알면 한 곳 추천해 달라고 냅다 여쭈었다. 그런데 돌아온 주인 아저씨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뭔가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보다는 조금 덜한) 듯한 충격을 받았다.


'최고의 명상 센터는 이미 네 안에 있어.

네가 어디서 명상을 하든 거기가 최고의 명상 센터야.'


충격적인 아저씨 말씀을 듣고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혼자서 명상하는 것이 어딘가가 부족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이곳 발리까지 당도한 거라고, 여태까지 그렇게만 생각해 왔는데. 나의 이런 생각에는 모순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명상이라는 것의 본질이 원래 그렇듯 결코 외부로부터 충족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


아저씨 말씀을 듣고 단박에 이해했다는 건 나도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과도 같다. 이 여행에서 명상이니 요가니 하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그동안 명상이라는 핑계로 나를 꽁꽁 싸메고 다녔던 것일까. 어쩌면 여행지가 발리든 어디든 상관없이 그저 떠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것일 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디지털 노마트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하면서 여행도 한다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 지도. 돌이켜보니 영 틀린 발상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인정 욕구가 이 여행에 단 1%만 기여했다고 해도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깨달음과 치유를 목적으로 떠나온 여행이 사실은 그게 아니라, 고작 인정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였다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100%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숙소에서 그동안 꽁꽁 싸매 왔던 내면의 허물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는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지긋지긋한 병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에 의해 나의 내면도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불행해지고 있었던 사실 또한 깨달았다. 이 사건이 있고 난 후부터 나는 더 이상 명상과 요가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그저 흘러가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어쩌면) 진정한 여행을 했다. 그래서 어땠냐고? 뭐, 흘러가는 대로 흘려지는 것도 꽤 할만 하더라.


여행이 이래서 재미있다. 나와는 1도 관계없는, 내 인생에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의 말 한마디로 인정하기 싫었던 나의 본모습을 독대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럼으로써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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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이 주인 아저씨와의 대화 이후 나는 순전한 호기심에 Yogabarn이라고 한느 우붓에서 가장 유명한 요가/명상 센터에서 소리명상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마음속 깊숙이 만족하지는 못했다. 수업이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명상을 지도하는 사람의 심중이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였고, 이 과정 자체가 본질에서 멀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저씨 말대로 그 어느 곳에서든, 소리 명상이든 그 어떤 방식으로든, '나 자신'과 '이 세상'에 깊이 연결할 수 있는 마음만 준비된다면 그곳이 어디든 최고의 명상 센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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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맛있었던 홈스테이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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