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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속도와 루틴의 문제

단순 반복 업무의 비중이 적은 일, 속도를 예측할 수 없어요.

by 목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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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0일 블로그 작성 글을 옮겨적되 현재의 나를 빌려 고칠 곳은 고쳤다.)


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실무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요즘 고민이 되는 게 있는데, 속도의 문제와 그 문제의 원인에 대한 것들이다. 내가 일을 빨리 처리하는 편이 아니라 늘 마음의 짐처럼 여기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최근 몇 주일간은 그 정도가 더 심해져서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답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그 누구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어찌 보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덥석 글쓰기 욕구라는 이름의 미끼를 물게 되었다.


참, 오래간만이다.

이른 아침에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다는 게. 행복이구나.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고, 그 안에서 살아움직이는 데이터들의 유기적인 흐름을 파악하며 그들을 통해 어떤 의미를 깨닫고 정리하여 공유하는 일, 내가 해오고 있는 일들이고 즐거운 일임이 맞다. 사실 내 기대보다 이런 일들의 비중이 높지 않았던 시즌도 있어서 못내 아쉽기도 했는데, 프로젝트 비슷하게 하나의 멋진 지표와 두세 개의 멋진 문장으로 전체의 현상을 뚫어보려고 하니 이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고... 그렇게 시간이 늘어져만 가더라.


내가 생각했던, 그 말인즉슨 조직에서 인지를 하는 '소요 기간' 보다 일이 훨씬 길어지게 되는 일이 생기고, 거기에 살을 덕지덕지 붙이다 보면 처음 그렸던 그림은 나무 한 그루에 토끼 한 마리였는데.. 어찌어찌 그리고 나니 울창한 수풀 사이에 수 십 마리 동물을 그려 넣고 있더라고. 분명 1-2주였던 것 같은데 피드백과 수정/보완이 반복되다 보니 한 달이 넘게 걸리고, 마지막 스퍼트를 내는 구간에서는 밤을 지새웠던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 지나가더라. 첫 번째로는 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 두 번째로는 이렇게 계속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두 가지 생각이 크로스로 머릿속을 통과해버렸는데, 이 시점에 정말 많은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었다.


gr-stocks-Iq9SaJezkOE-unsplash.jpg 출처 : Unsplash



가장 심플한 답은 이거다. 내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된다. 루틴하지 않은 업무의 특성이 이렇다고, 두 시간 걸릴 일은 두 시간이 걸리고, 한 시간이 걸릴 일은 한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라고, 세워둔 가설이 어긋날 수도 있고 데이터가 생각보다 가공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하다못해 인사이트를 정리하는 방향이 어긋날 경우는 처음부터 현상을 바라보는 안경부터 다시 끼워내야 할 때도 있을 거라고.


단순히 내가 부족해서, 손이 느려서, 생각의 속도와 숙련도가 떨어져서 시간이 길어진다면 그 길어지는 시간의 범위조차도 예측이 가능하리라. (일반적으로 1시간 걸리는데, 아직 내가 미숙해서 1.5배 정도 걸리면 보통 1시간 반 정도 걸릴 것이다.라는 예측을 할 수 있는 부분)


그런데 이번에 세워둔 프로젝트의 그림은 대략 이런 느낌이었기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목표는 '산과 들을 그리면 예쁜 작품이 나올 거야' 정도였지만 사실 이 일에 관련해서는 단순히 산과 들을 그리는 데 N 일이면 되는 거 아니냐? 너무 늦어지는 거 아니냐?라고 결론을 쉽게 낼 개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세하게 묘사할지 평이하게 그려낼지 컨셉부터 잡아야 하고, 물감을 쓸지 크레용을 사용할지, 색은 어느 정도 다양성을 갖출지, 스케치를 먼저 디테일하게 가져갈지 스케치는 빨리 끝내고 실제 드로잉에 많은 시간을 들일지, 내가 미술은 1도 모르지만 분명 그림 하나 그려내는 데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고민을 쌓아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런 비슷한 느낌이라는 거다.




물론 사실 내가 다소 게으른 부분이 있고, 아직 미숙하여 생각의 속도가 빠르지 않은 것 같다. 아직 발전하는 중이라서 기술적으로도 많이 부족하다 보니 그 누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늦어지고, 특히 이렇게 많은 자유도가 부여되는 경우는 더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아직도 멀었음을 느끼고, 더 많은 연습과 실전의 반복을 통해 자유도가 많은 일들조차도 '프로세스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가야겠다. 그게 맞고.


그런데 글쓰기 좋아하고 여유 있게 곰곰이 생각하면서 인사이트를 내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나라서, 이런 게겐프레싱 전술이 사실 맞지 않는 옷인 것 같기는 하다. 역시, 탈압박은 축구도, 일도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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