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타협하면서 이제야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었다.
(2023년 2월 28일 블로그 작성 글을 옮겨적되 현재의 나를 빌려 고칠 곳은 고쳤다.)
2018년 혈혈단신 맨몸으로 운 좋게 커리어 전환에 성공한 그날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여정은 처절한 실패였다. 커리어 전환 후 내가 원하던 두 번째 직무를 달고 일을 할 수 있게 됨 자체에 만족한다면 그 자체로 성공일 수 있겠으나, 명함이 뭐가 중요한가. 더구나 이 업계에서. 철저하게 실력과 경험이라는 옷을 하나하나 시의 적절히 잘 챙겨 입어야 지속성을 겨우 담보할 수 있는, 빠르게 돌아가고 분주하게 쫓아가야 하는 직무다.
나는 그냥 데이터 분석을 하고 싶었고, 사실 이는 막연했다. 첫 직장에서 적성이 맞지 않음을 발견한 후 적성과 흥미에만 몰입한 나머지 세부적인 부분까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부딪혔다. 지금 생각하면 날 뽑아준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지경.
첫 직장이 큰 궤에서는 마케팅이었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내가 하던 업무는 부서의 비즈니스 예산관리 쪽에 가까웠던 것도 같다. 내가 사람 상대로 돈을 벌어오는 일을 못 했던 것도 있고, 숫자를 관리하는 에서만 소질을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돌고 돌아 숫자 보는 일을 하게 되었네.) 데이터도 '마케팅' 쪽 숫자를 보는 직무에 지원해서 합격을 하게 되었고, 일을 시작했을 때 정말 습자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현실은 암흑 그 자체였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행운의 열쇠라고 내가 표현하는 나의 커리어 전환 첫 입사 소회는 아래 글에 절절히 녹아있다.)
행운의 열쇠의 주인공이기도 한 내가 '모시는' ㅋㅋ 동생에게 건너들어 기본적인 퍼포먼스 마케팅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가지고 면접에 임했고 어찌어찌 합격은 했는데 현업은 또 다른 세계였던 것. 당시의 나는 2년 3개월 정도 첫 직장에 발을 담그다 1년 10개월 가까이 회사 생활을 쉬었기 때문에 비즈니스와 사회생활에 대한 '감' 조차도 잃어가던 시절이었다. 철저히 아마추어적이었고 나이브했으며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낙제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미숙했다. 다 그런 거지만, 나는 좀 심했다. 이렇게 돈 버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고 비참한 수준의 비즈니스 이해도를 가진 상태였다.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정말 최선은 다했다. 지금도 기억난다. 업무 시간에 미처 해결하지 못한 쿼리문을 다듬기 위해 추석 연휴에 아무도 없을 것 같은 회사에 나가서 혼자 낑낑대다 더 미궁에 빠진 채 회사 앞 이삭토스트에서 눈물 젖은 토스트와 주스를 사 마시며 장고에 빠졌던 날. 음, 30 갓 넘은 나에게 직장이란 행운과 감사 그 자체였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기 위해선 오롯이 내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어 수습 기간을 채우지도 못할 것 같아 부서 이동(전배)을 신청했고 프로덕트와 고객 단을 메인으로 둬야 하는 마케팅 데이터 분석에서 비즈니스와 제휴점의 데이터를 메인으로 바라보는 비즈니스 데이터 분석(Business Analyst) 포지션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나는 운이 좋고, 조력자도 많다고 생각한다. 가라앉을 때 즈음 누군가 나타나고,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재기의 기회를 준다. 나는 결코 큰 실패를 맛본 사람은 아니다. 리스크 테이킹을 하는 타입도 아니기에 사업가 기질이 다분한 것도 아니어서 기껏해야 회사 관두고 자아성찰 시간 1년 10개월 가진 게 인생 최대의 도전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작은 실패 끝에는 언젠가 도움을 주는 감사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게다가 이 실패의 과정, 불확실성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때 내 손을 잡아준 대단히 용감한 사람마저 존재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인생이 감사로 가득 찰 수가 있나? 정말 잘 살아야 하고 더 감사히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들이다.
비즈니스 데이터 분석, Business Analyst, 업계에서 BA라고 불리는 포지션으로 이동 후 감사히도 잘 적응해서 어느덧 6년 차에 접어들었다. 유속과도 같은 시간의 흐름에 겨우 편승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업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입점한 파트너들의 퍼포먼스를 확인하고, 제안하고, 통찰을 하며, 내가 언젠가는 섭렵해야 할 고객 관점에서의 비즈니스를 조금씩 바라보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자리 잡아간다'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난 멀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고민을 깊이 해야 하고, 앞으로 내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최대한 롱런할 수 있을지, 직장에 속한 내가 아니라 나 자신이 브랜드로 기능할 수 있는 수준이 될지에 대한 자가 평가를 끊임없이 경주해야 한다. 나아가 첫 직장에서의 고배를 마실 때 다짐했던 '고객 데이터 분석의 전문가가 될 것'이라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디서 어떤 데이터를 바라보건 고객 관점에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하고 고객이 무엇을 앞으로 원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경험과 기술을 가진 전문가가 되어야만 한다 나는.
이제 한 번 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