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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IT기업 6년 차, 이직 후 2년 차

나이는 잡숴가는데... 그래도 잘 한 결정

by 목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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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2일 블로그 작성 글을 옮겨적되 현재의 나를 빌려 고칠 곳은 고쳤다.)




6년, 그리고 2년


시간이 정말 빠르다.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time flies"인데, 정말 시간의 빠르기가 지수함수 같다 요즘은.


2016년 9월 공채로 입사한 첫 직장에서 2년 3개월 만에 퇴사한 이후 특수대학원 진학. 그리고 2017년 그녀를 만났고 2018년 22개월 동안의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어렵사리 재취업에 성공. 그리고 4년 조금 못 지난 2022년 3월 이직 후 1년이 또 금세 지났다.


첫 직장 취업할 때까지는 남들처럼 적당히 잘 살아온 것 같은데, 첫 직장에서부터 내 인생이 갑작스레 드라마틱 해졌다. 리스크가 줄어들기 시작해야 하는 시점부터 아이러니하게 본격적인 리스크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


평범하지만 열심히 사는 다른 친구들처럼 대기업 위주로 공채 50곳 넘게 써보고 떨어지고 하는 삶을 거부하고 바늘구멍 같던 스포츠마케팅 하나만 바라보며 올인 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스포츠 브랜드 공채 합격이 덜컥 되어 원하던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행복과 자부심은 얼마 가지 않았다.


밖에서 보여지는 나와, 회사에서 분투하는 나와, 진짜 찾고싶은 나의 모습이 삼단분리 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정확히 이 때부터였다.



milad-fakurian-ePAL0f6jjr0-unsplash.jpg 출처 : Unsplash의 milad-fakurian


그래서 결국 퇴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용감했다. 하지만 뒤가 없었다. 그 때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 100% 확신할 수 있다.


그렇게 22개월을 놀다가(이것저것 했지만 재정적으로는 논 게 맞지. 되려 심각한 마이너스 재정 상태였지.) 어렵사리 운 좋게 IT 기업의 데이터 분석 직무로 재취업을 할 수가 있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하지만 커리어 전환이라는 게 역시나 녹록지 않았다.


안 맞는 옷을 벗어던지고 다른 옷을 입게 된 것도 너무나 행운인데, 마음가짐이 서툴렀는지 처음에는 또 엄청 좌절했었다. 22개월을 쉬다 보니 시스템에 대한 감이 떨어져 버린 것. 나이브함과 서툶 그 자체였던 부끄러운 3개월을 경험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


사내 이동을 통해 조직을 바꿨고, 다행히 잘 적응해서 3년 넘게 일하다 점프를 위한 이직이 잘 되어 감사하던 게 엊그젠데 그렇게 1년이 또 훌쩍 지나버렸다.


그래도 성공 실패 좌절 번갈아 마셔가며 보낸 지난 시간이 결코 헛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IT 업계의 데이터 분석가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좋은 동료들 틈바구니에서 분투하며 큰 욕심 없이 내 밥그릇 하나 챙길 정도는 이제 되었기 때문.


커리어 전환 성공 후 보낸 지난 6년이 매우 다단했지만 엉금엉금, 가끔은 성큼성큼 그래도 열심히 이겨내고 여기까지 그래도 잘 왔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라이프의 방점은 여기서..




나이는 잡숴가는데


그렇게 6년이 지난 지금, 문제 아닌 문제는 나이다.


내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평범한 BA(Business Analyst, 비즈니스 분석가)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내 나이가 이제 결코 적지가 않다는 데 있다.


이제 어디에 30대 중반이라고 하면 뻥치시네 소리 들을 와꾸에 실제로도 그러하게 되었고, 즉슨 눈 깜짝하면 앞자리 바뀌게 생긴 상황이다. 정말 하루하루가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지는데, 왠지 조급함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방심하면 한 달이 훅 가있다. 업무적으로는 더딘데 말이다.


(2025년 추가 : 와 이제 진짜로 눈 깜짝하면 앞자리 바뀌게 생겼다. 저 글을 쓸 때만 해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도였는데, 지금은 진짜 목전에 둔 상황 아닌가.)


설상가상 동료들은 또래이거나 대부분 나보다 연소자이다.


난 윗분들보다 연배가 아래인 친구들과 잘 지내는 편이라 이 분위기가 익숙하고 자연스러운데, 한편으로는 커리어 전환하느라 늦어진 부분들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가끔씩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하나? 싶기도 한 이유다. 뭐 지금 페이스에 만족하기 때문에 현상 유지는 하겠지만, 뇌구조 안쪽 깊숙이 어딘가에 작은 고민을 '키핑' 해놓고 있는 건 사실이다.


언젠가는 의사결정을 받는 입장에서 내리는 입장으로, 조직을 꾸리는 위치로 가게 될 날이 오겠지만.. 그리고 주변 친구들이나 내 나이대의 동료들은 꽤나 그 위치로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나는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다. 나이를 먹어감에도 불구하고.


업 특성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 강한 것 같은데, 아직 현업에서 씨름하며 배워야 할 지식과 스킬의 양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알아가는 속도보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도 느끼고. 그걸 잡는 공부도 해봐야 하고, 흐름과 트렌드를 좀 더 잘 바라볼 수 있는 노하우도 부족하다. 더 많이 공부하고 실험해 보고 실패해야 한다 나는.


(2025년 추가 : AI의 상용화로 이 생각이 더 강해졌다. 정확히는 생각이 더 강해지지 않으면 큰일나게 생겼기 때문에 강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 많이 공부하고 실험하고 실패해야 할 때다. 이제 되레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가 나를 버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나 할까)


이건 나이랑 상관이 없기 때문에 나이가 먹어감에도 조급하기보다 오히려 더 침착하게 배워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잘 한 결정


영화 '인턴'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은 게 아니다. 그건 말도 안 된다. 나이에 걸맞는 수준의 지혜와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나는 지금 딱 내 레벨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냥 열심히 내 연차에 맞게 내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내 연차 대비해서 나이가 조금 많은 것뿐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커리어 전환을 위해 보낸 2년의 시간에 첫 직장에서 보낸 2년이라는 시간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말이다.


내가 후회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늘 자기 객관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천직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 입사하게 된 첫 직장에서의 실패도 그 과정이고, 이후에 찾게 된 지금의 내 일은 내 결정의 산물이다.


그 안에서 실패와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는데, 확실한 건 지금 나의 일이 내 적성에 딱 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사람을 참 행복하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조금 늦게라도 찾아서, 돈을 벌면서 재밌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24시간 중 12시간이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이 시간마저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 쓰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는 것이.


(2025년 추가 : 지금도 기본적으로 같은 결의 생각을 갖고 살지만, 달라진 점은 결혼 그리고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조금 더 빡빡하고 치열하게 생존해 내야 한다는 욕구가 강해졌다는 것. 가장으로서 이제 자아실현 이야기 하며 노닐 때가 아니고, 그냥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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