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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의 명과 암

4) 인도 생활

by 이목화

비가 온다.

인도도 한국 장마처럼 몬순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장마는 하루 종일, 주야장천 쏟아지는데

몬순은 30분~1시간 정도 확 쏟아붓고

잠잠하다 또 오고 하는 식이다.

느낌은 동남아의 스콜과 비슷하다.

물론 장마철에도 비가 많이 올 때는 엄청 오지만

몬순기간엔 정말 집중강우라 할만하다.

비 오는 소리를 듣자면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나는데

와 정말 많이 오는구나 싶다.

보통 6월 말~8월 초 중순까지가 몬순이다.

딱 지금이 그런 기간인데

나는 다리를 다쳐서 잘 걷지 못하고

외출도 일주일에 한 번 하는데

마침 몬순이라 더더욱 나가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루틴처럼

일주일에 한 번쯤은 나가보리라 마음먹고

매주 나갔었다.

밥을 먹던지 커피를 마시던지

뭐라도 하나 하고 들어오면

그래도 오늘은 좀 다른 하루가 됐구나 싶다.

지난주엔 이틀을 외출하려고 큰맘 먹고

계획을 짰다.

하루는 카페, 하루는 병원.

그렇게 준비를 했는데

하루 전날 비가 엄청 쏟아지더니

왜인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

우리 집은 말로는 1st floor

실제 층수는 3층이다.

차마 지금 두 층을 오르내리기는 힘들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위험하다.

엘리베이터가 고쳐지길 기다리며

하루하루의 스케줄을 취소해 나가다

결국 모든 일정이 취소되어

지난주엔 외출을 하지 못했다.


조금 서러웠다.

물론 다리 다치고 계속 느낀 거긴 한데

엘베 고장 났다고 외출도 못하다니

이 나라는 왜 엘베를 이렇게 오래 방치하나

그 카페에 빵이 맛있어서

(사실 한국식 단팥빵을 파는 가게다)

한번 가서 먹고싳었을 뿐인데

거의 일주일은 못 가게 만드는 건가.

다리도 이제 거의 다 나았는데

왜 의사는 자세히 봐주지도 않고

그렇게 보수적으로 재활 일정을 잡은 건가

모든 것이 다 짜증 났다.

그냥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돌아다니면서 가끔 만나는

계단 예닐곱 개도 그렇게 난리를 치며 오르내리는데

두 층을 가는 건 좀 무리다.

엘베가 정말 오래 고쳐지지 않으면

결국 시도해야 할 도전이겠지만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땀범벅이 되고 말겠지.


집에 있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에 이탈리아에 혼자 여행 갔을 때

가자마자 첫날에 소매치기를 당했었다.

공항에서 로마 시내로 가는 열차 안에서.

정말 운 좋게

그 슬라브 여자애들은

내 현금 일부만 가져가고

(지갑 속에 모든 현금)

내 지갑은 열차 내에 버리고 갔다.

정말 운이 좋았다 생각했지만

그날 팔찌 강매하는 세네갈 덩치 큰 아이들도 만나고

그 이후부터는 모든 걸 경계하고 다녔다.

그리고 이어서 간 그리스에서도

선크림테러를 당하며 물건을 뺏어가려는 놈들도 만났다.

나는 혼자 여행 가면 문제가 생기는 건가?

라는 자조적인 생각도 들었다.

다리가 다친 건에 대해

몇 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웃으며 결론을 지어도

여전히 머릿속에 한 번씩 찾아온다.

내가 운이 없다느니

내 반년은 망했다느니

하는 그런 섣부른 생각들.

물론 츙분히 이해한다.

나의 그런 생각

나의 마음.


하지만 난 T에 가까운 F이기에

마냥 감정에 휩쓸리진 않는다.

그리고 매우 긍정적인 면이 있기에

부정적인 생각 속에 박혀있진 않는다.

캐나다로 워홀 갔을 때

혼자 갔음에도 일도 잘 찾아 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재미있게 잘 놀다 왔지 않은가

다리 다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만

내가 누리던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지 않은가

남들 놀 때 난 공부할 수 있고

책을 보던가 좀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지 않는가

다르게 보면 정신승리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모든 일엔 명과 암이 있는 법

잘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도 있고

긍정적인 면이 있으면 부정적인 면도 있고

둘 중 하나에만 매몰되면 결국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승리나 성공을 쟁취했을 때에도

약점이나 리스크를 생각하며 보완하고

실패하고 패배했을 때에는

문제점을 보완해

여전히 존재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인생이나 사회는 결국 그렇게 흘러간다.


나도 몇 달간 집에만 주로 머물며

머릿속에 가득하던 잡념과 스트레스를 날렸다.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아무 생각 앖이, 너무 스트레스 없이 지냈다.

나의 정신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해진 듯하다.

이젠 다리만 다 나으면 된다.

이 경험이 긴장감과 조급함 속에 살던 내게

앞으로 살아갈 때에도 계속 떠올리며

여유를 줄 수 있는 경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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