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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Nov 12. 2015

강릉의 추억

바다를 닮아가는 선비들

1- 강릉 가는 기차표를 손에 쥐다

  오늘 같은 날이 있는 걸 보면 신데렐라가 지켜야 했던 시간들을 한 번쯤은 어겨도 좋을 듯 싶다. 늘 시간에 쫓기는 듯 하루를 보내고 다시 귀가해야 했던 것이 한 번쯤은 아니 두어 번 이상은 아쉬운 날들이 있었다. 앞으로도 쫓기는 듯 신데렐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날도 우린 신데렐라가 되어야 할 운명에 처해졌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저녁을 먹는 시간이 너무도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우린 마음속으로는 초조해지면서 한 번쯤은 이 신데렐라 증후군에서 벗어나도 싶은 일탈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계산한 것보다 밥은 늦게 왔고 이왕 늦은 거 여유롭게 밥이나 먹자고 우린 여유를 부렸다. 그런데 누군가 밤기차를 타자고 했고 우린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환영의 소리를 질렀고 기차 시간을 알아보기로 했다. 기차 시간을 알아보는 것보다 차라리 우리를 어디론가 싣고 갈 수 있는 기차만 있다면 우린 기꺼히 그 기차를 타기로 했다. 우린 기꺼히 바다를 선택했고 강릉 가는 왕복 기차표를 끊었다. 무모한 듯 그러나 벗어나고 싶은 일상에 대한 갈망이 더 강했기에 우린 선택을 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날짜가 바뀌었어야 기차는 왔고 우린 덜컹거리는 기차를 탔다.


  어두운 밤과 어두운 산속을 달리기 시작하고 우린 피곤에 곯아떨어졌다. 한참을 자고 난 후 우연히 눈을 떴는데 그곳이 바로 "도계역"이었다. 도계역... 이곳이 바로 꽃 피는 봄이 오면에 나오던 그 학교가 있는 곳이 아닌가? 너무 멀게만 느껴지던 이 북쪽 땅이 오히러 이제 더 가깝고 오히려 가깝게 느껴지던 남쪽 땅이 오히려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 아무튼 영화 속 그 동네를 발을 내딛지는 않지만 그곳을 단순히 스쳐지나 가 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이고.. 앞으로 무작정 기차를 탄다면 한 번쯤은 내릴 것임을 약속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시간은 어느덧 날을 밝히면서 우리를 강릉역에 내려놓았다..


2 - 비 오는 바다 경포에 서서

  
  새벽 4시 30분에 강릉역에 내렸다. 장마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부슬 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이 밝아 있었고, 비가 내리는 통에 일출을 보고 싶어 있던 우리는 마음을 접었다. 아침부터 쓰디쓴 커피를 들이키며 바삐 우리가 오후 2시까지 강릉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여행의 코스는 물론 내가 잡는다는 것은 거의 불문율에 가까울 정도가 되어 버렸고, 아무도 코스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만도 가지지 않는다.


  우선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 경포대로 향했다. 12년 만에 다시 찾은 강릉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택시 타고 바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직도 감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였을까? 왠지 낯익은 길을 가는 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경포대에 도착하니 비바람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시원스레 뻗은 고운 모래사장 위에서 거친 파도를 보며 짠내음을 맡으며 머릿속 복잡한 감정들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라는 것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이기에 최근의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인간에게 주는 피해의 심각성을 약간은 느끼고 있었기에 경포대 바다는 나를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파도도 거세지는데 동해바다 멀리서 오징어잡이 배들이 하나 둘 떠있는 것을 보면서 거친 파도를 헤치는 강인한 사람을 통해 나는 약간의 일렁임에도 휘청거려야 했던 모습들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체온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배고픔도 밀려오기 시작했다. 우린 해변을 걸으면서 파도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고 한편으로 썩 괜찮은 밥집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사실 비 오는 바다에서 차 한잔 마시면서 말없이 바다를 감상하는 것이 제맛인데 그럴 만한 공간을 우린 찾지 못했다. 그냥 어느 식당에서 시원한 생태찌개를 먹으면서 젖었던 몸을 한참 동안 말리면서 이야기에 이야기를 거듭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었고 우린 다음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가야 했다. 가는 도중 뜻하지 않게 비보이 공연을 보는 행운도 잠깐 누렸다.
참소리 박물관.. 이곳이 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다.....



3 - 참소리를 만나다.


  가자고 했던 나조차도 약간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던 곳이다. 오래전부터 많이 들었던 그러나 처음으로 방문한 이곳... 아직도 하늘은 시커먼 구름이 가득하고 비를 수시로 뿌려댔다. 바람도 여전히 많이 부는... 그러나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 손님을 받을 준비는 아직 안되어 있었다. 입장료 7000원이라는 말이 약간은 망설였지만 나의 과감한 선택으로 표를 먼저 끊고 난 이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으로 경포호가 보이는 이곳은 자리를 꽤 좋은 곳이 이었다. 드디어 입장은 시작되고 우린 그냥 멋모르고 전시관을 한바퀴 휙~~~~ 둘러보았다. 단지  오래된 물건들에 대한 동경심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우리의 안목.. 그러나 해설사 분이 해설해주신다.


  문제는 해설이 아니라 200년도 더 된 물건에게서 아직도 소리가 난다는 것을 실연해주는 것이 더 신기했다. 둔탁하지만 요즘의 가공된 디지털 음악보다 훨씬 따스한 느낌의 소리들이 흘러 나왔다. 각종 축음기와 함께 에디슨이 발명했던 각종 기구들을 보면서 우와~~ 이것도 에디슨이 만든 거야.. 신기하고 놀랄 따름이었다. 음악감상실에서 직접 노래를 들으면서 일정을 끝내는 순간까지 1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그러나 결코 시간과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게 한 이곳..
2시까지 일정을 마쳐야 하는 우리는 서둘러 선교장을 나서는데....


  4 - 선교장 - 바다를 닮아가는 선비들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선교장을 갔다. 나지막한 언덕을 사이로 펼쳐진 들판에는 예스러움이 그대로 묻어 났다. 그 들판 위에 선교장이 얹혀 있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원림을 조성해놓은 아담한 정자에서 경포호에 흔들리는 물결을 보면서 시를 읊었을 선비들을 생각해본다. 지금은 들판으로 변한 선교장 앞은 예전에는 경포호였다는 것에 놀라웠다.

 
  배를 타고 들어와야 했다고 해서 붙여진 船橋장... 비 내리는 선교장은 구경하는 사람들조차도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 정도로 선교장에서 맑은 소리를 만들어 냈다. 원림에 가득가득한 연꽃들과 삐걱거리는 문.... 어느 틈엔가 문화 해설해주시는 분이 우리 옆에 붙어서 자세히도 설명을 해주신다. 그냥 양반집임을 느끼고 가야 했을 것을 그 느낌 속에 지식까지 얻어갈 수 있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선교장 앞을 길게 장식한 담을 겸한 아랫채는 함부로 선교장을 넘나들게 못하게 만든 속세와의 경계였다. 이 선교장에 예전에 "조인영"이가 왔다고 한다. 나는 너무도 놀라 조선 말기 세도가였던 풍양 조씨의 조인영이냐고 물었을 때 너무나도 떨렸고.. 그렇다고 대답을 들었을 때 내가 역사의 현장에 서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집안 구석구석에 담긴 조상의 지혜와 곡선과 직선의 절묘한 만남.. 그리고 객을 정성스레 맞이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삶과 그 속에 사는 집주인의 고달픔을 헤아려 만든 것들... 크지만 화려하지 않고 멋을 부렀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딱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그 만큼이었다. 필시 이 집을 누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경포호만큼 너른 마음을 가졌을 것이며 경포 앞 동해바다를 품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오죽헌이다.
 
5. 율곡과 신사임당이 사는 곳 오죽헌
 
  예전에 좋았던 기억들은 다시 찾았을 때 십중팔구 인간의 욕심으로 마구 파헤쳐져 자연미보다 인공미가 더해져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는데, 오죽헌도 역시 그러하다. 율곡과 사임당은 이미 현대 인간들의 목조름에 숨 막혀 죽음의 상태에 이르렀다. 다만 오죽만이 간신히 율곡과 사임당을 숨 쉬게 할 뿐이다. 그래도 율곡과 사임당은 경포호를 보면서 동해바다를 보면서 넉넉한 마음을 키웠으리라.. 바다가 율곡을 키웠고 사임당을 길렀으며 율곡과 사임당은 바다를 닮아갔을 것이다.
이렇게 강릉에서의 일탈은 끝이 나고 다시 기차를 탔다...

200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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