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로 떠나는 여행 - (15)로마 첫번째 이야기

세상의 중심 로마

로마 시내에서의 첫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숙소에서 가까운 콜로세움에서 시작했습니다.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일단 긴장부터 했습니다. 눈앞의 콜로세움은 거대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거의 2000년전에 돌을 쌓아 만든 것이 지금까지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로마 멸망 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콜로세움에 있던 최고급 건축자재와 장식들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콜로세움 근처에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팔라티노 언덕 티투스 개선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콜로세움에서 본 개선문

일단 콘스탄티누스 개선문부터 보았습니다.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로마 원로원에서 급하게 만든 것입니다. 원로원은 다른 사람을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수를 당하지 않기 위한 발악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개선문은 재활용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곳에 있던 것을 이 개선문에 붙여놓은 것입니다.


개선문을 보고 콜로세움안으로 입장을 했습니다.

들어가면서 콜로세움의 작동원리를 듣는 순간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건물을 누가 설계했는지 모른다는 것 또한 미스테리한 일입니다.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데리고 온 유대인 포로 10만명 중 4만명을 동원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또한 콜로세움이 무너지면 지구가 멸망한단다고 할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이탈리아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70년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80년에 건축이 끝나 100일 축제 기간 동안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개막식을 올렸다. 온천 침전물 대리석으로 건축된 이 커다란 원형 건물은 처음에는 플라비아누스 원형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었다.

십자가있는 곳이 황제 자리

콜로세움을 보고 로마가 시작된 팔라티노 언덕을 갔습니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이곳에서 세웠고 로마 역대 궁궐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처음 본 곳은 황제 전용 원형 경기장이었습니다.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었습니다.

끝 동그란 부분이 원형경기장

두번째로 간 곳은 로마의 제정을 연 아우구스투스 궁전을 갔습니다. 그의 부인이었던 라비아의 집을 확충하여 만든 곳입니다. 황제의 궁전치고는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더 어울렸습니다. 남아있는 벽에는 구멍이 있었는데, 콜로세움처럼 장식을 뜯어 가고 남은 흔적이라고 합니다.

세번째로 간 곳은 황제 목욕탕이었습니다. 로마는 목욕문화로 유명하죠. 카라카라 목욕장, 디오클레티니아누스 목욕장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로마의 목욕장은 종합레포츠 타운 겸 정치 토론장이기도 하죠. 이 목욕탕은 황제가 암살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대리석을 얇게 해서 바깥에서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고 합니다.

목욕장

네번째는 레물루스 집터 추정 빌굴장을 갔 습니다. 발굴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설이 역사가 될까요?

발굴중

다섯째는 포로 로마노가 보이는 황제 전망대로 갔습니다. 로마의 정치 중심지가 아래로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끔 와서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황제가 포로로마노를 바라본 전망대

우리는 언덕을 내려와 포로로마노로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티투스 개선문을 보았습니다. 그는 폼페이 사건을 수습하다 과로사로 죽은 황제 입니다.


티투스 개선문은 티투스가 이스라엘 유대아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고 난 후 기념으로 만들었고, 중세 유대인 탄압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 국장에 나오는 메노라를 개선문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티투스 개선문

포로로마노에 사실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은 별로없습니다. 그때 오가던 사람도 당연히 없어서 활기찬 모습은 관광객들로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상상의 역사학이 필요했습니다. 포로로마노로 걸으며 로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포로로마노 거리

포로로마노의 모습을 볼까요.


안토니우스 신전
막시무스 공회장

쿠리아 율리아로 과거 원로원이 모이던 곳입니다.

쿠리아 율리아
문서고

카이사르 화장장이 있어요. 화장을 끝내고 유해를 수습하려고 하는데 비가 내려 한줌의 재도 남지 않았다 하네요.

카이사르 화장장

사투르누스신전 아래에 카이사르가 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준비했다가 죽으면서 안토니우스가 가져갑니다.

사투르누스 신전

마지막으로 세베루스 개선문을 통해서 포로로마노를 빠져나와 통일기념관을 거쳐나왔습니다.

세베루스 개선문

밥을 먹었습니다. 4가지 종류의 피자를 먹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까나리액젓 뿌린 듯한 맛이 났습니다.



밥먹고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진실의 입으로 갔습니다. 진실의 입은 거짓말 하는 사람의 손을 잘랐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했습니다. 죄인이 거짓말 못하게 하는 거짓말탐지기 같은 거라 봐도 되겠네요. 그런데 실로 뒤에 사람이 있다가 손을 자를 사람이 오면 진실을 말해도 손을 잘랐다고 합니다. 입 앞에는 사진을 찍느라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길게 빨리 찍으라고 재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 온 사람들은 관리하시는 분이 찍어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입 앞에 기부를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진실의 입을 지나 그리스정교 교회인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을 들렀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르게세 미술관을 갔습니다. 공원과 빌라(지금의 미술관)의 소유주였던 시피오네 보르게제(Scipione Borghese) 추기경은 쾌락주의자로 풍부한 재산을 통해 다양한 문화생활을 향유하던 인물이었다. 특히 베르니니를 비롯한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그는 수준 높은 미술품 상당수를 수집하여 개인 컬렉션을 갖추었고 그것들이 미술관의 모태가 되었다. 후손들이 나폴레옹에게 작품을 엄청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그후 후손들이 기증을 했다고 합니다.

안내판

그래도 알찬 미술품으로 소문이 나 있다고 합니다. 잘 가꾸어진 정원은 여름철 로마 사람들의 휴식공간이 되어줄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미술관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숍이 1층 출입구에 있어 엄청 복잡해서 조용히 쉬면서 여유를 가지기는 힘들었습니다.


보르게세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작품들을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한번 감상해 보시죠.

아폴로와 다프네
과일바구니를 들고 있는 소년
골리앗 머리를 든 다비드

미술관을 나와 시간이 조금남는다고 가이드님이 우리를 산 피에트르 인 빈콜리 성당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미켈란젤로의 3대 작품 중 하나인 모세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묶었던 쇠사슬이 보관되어 있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모세상의 조각품은 미술에 문외한 사람으로 그냥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젤 앞 정중앙에 유리상자안에 쇠사슬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끝내고 나오는데 멀리서 해지는 하늘이 참 멋있었습니다.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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