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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Feb 11. 2017

낯선 익숙함

청풍에서 기억을 마주함

9년전 교직생활을 처음 시작했을때  제천을 처음으로 왔었다. 낯설다는 느낌보다는 합격한 기쁨과 홀로 이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약간의 어색함만 있었다.


임명장을 받고  첫 부임지로 인사를 하러가는 날 내가 가야할 곳에 근무하는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데리러 왔었다. 차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운전을 했던 선생님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였다. 나는 대화를 주도적으로 끌어가기보다는 묻는 말에 답하는 정도였다.그외는 창밖을 구경했다. 시내를 빠져나와 어딘지 모르는 곳을 가는데 구비구비 산길을 돌고돌아  넓은 호수가 매력적인 곳에 나를 내려 놓았다. 시골 출신이라 이런 곳에 와도 좋다 이런 생각이였는데, 큰 도시에 살다온 사람이면 기겁을 할수도 있는 그런 곳이였다. 

레이크호텔에서 본 청풍호

그곳에서 3년을 자연이 주는 넉넉함에 푹 빠져 살았다. 호숫가를 산책하거나 드라이브도 했고 등산도 다녔었다. 봄에는 벚꽃이 온동네를 덮었다. 이 시골에 발디딜 틈없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남들은 멀리서 구경오는 것이지만 나는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할때 벚꽃이 주는 즐거움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않고 마음껏 느꼈다. 여름에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계곡들이 주변에 많아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가면 피서를 따로 갈 필요가 없었다. 가을은 청풍호 유람선을 타고 즐기는 단풍  구경은 벚꽃에 버금갈 정도로 매력적인 볼거리였다. 겨울은 겨울이 주는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였다.


계절을 따지지 않는 이곳의 명소는 산이였다. 주변에는 등산인들에게는 알려진 산이 많았고 주말에는 산악회원들이 꽤 많이 왔었다. 학교 주변을 둘러싼 여러 산들을 틈만 나면 다녔다. 이런 곳을 두고 어쩔 수 없이 떠났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에게 미련이 남게 했었다.  자연도 사람도 추억속에 묻어두어야만 했다.


학교에서 본 청풍호, 멀리 빨간색 옥순대교가 보인다

구비구비 산길을 지나 호수가 매력적이 이곳을 6년만에 다시 왔다. 수없이 다녔던 길을 따라 오면서 잊고 있었던 6년전 기억이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났다. 굳이 네비가 없어도 갈림길에서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행동들과 이곳저곳에  흩어져 남아있는 자연과 사람에 대한 흔적들이 기억이라는 단어에 잘 어울리게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산골짜기 곳곳에 내가 남겨두었던 흔적들이 도로를 따라 내 눈앞에 나타날 때마다 그때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 그리고  혹시 이곳에 계속 있었다면 이렇게 지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어 나타났다.

월악산 자락의 오래된 절 '신륵사' 그곳을 찾았을때 절을 지키는 개 짖는 소리에 잠깐 들어가도 되는 것일까? 망설이게 했던 그 개가 잘있는지,

월악산 등산코스의 입구를 지키는 '덕주사'와 마애불 그리고 산사음악회는 여전한지,

악산 영봉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데 한번은 겸손하게 만드는 나뭇가지는 잘 흔들리고 있는지,

금수산 정방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지금도 멋진 지,

작은동산 큰동산은 이름에 맞지 않게 꽤 험하고 높은 산인데, 이름만 보고 무시하는 등산객들을 잘 약올리고 있는지,

신선봉 미인봉의 밧줄은 튼튼하게 잘 있는지, 의병장 이강년이 잡혔던 까치산은 제천과 청풍의 두 동네를 잘 지켜주고 있는지,

비봉산 활공장은 여전히 청풍호 주변의 모습을 남해안 다도해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멋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내 기억의 반가움과 얼만큼 같을까?

설레이는 만남이 스쳐지나가고 스쳐지나갈 것이다.

눈오는 날 학교에서 바라본 풍경

시간속에 박제되어 버린 사람들이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의 웃음은 오히려 박제되어 있는  나를 깨웠다. 시간이 흘렸지만 옛 모습은 여전했고 자연이 주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참 곱게 늙어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부부가 그물을 나란히 손질 모습, 매콤하게 끓여주는 매운탕은 여전했고, 마트에서 손님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손님을 맞이할때 웃는 주인의 모습은 부처를 닮아갔다


모든 것이 기억속 예전의 모습 그대로인 이곳에, 변한 것은 나 밖에 없었다.

작고 아담한 빵집이 생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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