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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May 17. 2017

낙안읍성

사람에 치인 피곤을 치유하다

긴 연휴는 결국 도로와 관광지를 차와 사람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어디를 가든 한가로움과 여유로움과 자연의 여백은 느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유명세를 탄 곳은 긴 기다림 아니면  체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게으름을 탓하기에는 여행라는 것을 통해 우리들이 즐기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상실하고 말았다. 여행지를 잘못 선택한 것, 으레 연휴 관광지는 이럴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대응하지 못한 것이 그것이 실수였다.


결국 무더위와 함께 더이상 여행은 힘들다고 판단하고 미리 숙소를 예매해 둔 낙안읍성으로 왔다. 북적거리는 동문과는 달리 남문은 햇빛말고는 그 어떤 것도 넘치지 않았다. 낙안읍성의 성벽과 초가집들 성벽을 걷는 사람들 그 앞으로 넘실대는 보리밭은 마음의 여유를 비로소 느끼게 해주었다.


삼거리민박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이다. 성문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집은 같았고 모든 길도 같았다. 마음가는대로 걷다보면 목적지에 다다를 것 같았다. 누군가 옆에서 조바심을 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마을의 공동우물가겸 빨래터를 지나니 여기저기 모두 민박이였다.

다행히 민박집은 찾기 쉬웠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넓은 마당을 사이에두고 안채와 별채가 마주보고 있었다. 안채앞으로는 수돗가가 자리잡고 있었고 긴 막대기에 걸린 빨래줄에는 수건들이 널려있었다. 오랫만에 스테인레스로 만든  빨래건조대  대신 빨래줄을 보았다. 그리고 한쪽은 화초로 한쪽은 텃밭으로 한쪽은 닭들로 저마다 공간을 차지하며 마당을 공유하고 있었다.


주인할머니께 전화하니 별채를 사용하라고 하셨다. 옛날 문과 현대식 문이 함께 있는 별채의 문을 여니 생각보다 넓고 괜찮았고 1박을 머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일단 휴식을 취했다. 사람에 지친 몸을 이곳에서 풀어야만 했다.


한참을 곤히 자고 나니 무더위는 한풀 수그러 들었고 우리는 읍성 구경을 나섰다. 뭔가 배우고 느낀다는 것보다는 그냥 산책의 느낌이 더 강했다. 이제서야 비로소 돌담도 보이고 잘 가꾸어놓은 화초도 보이고 담쟁이도  보였다.


옛마을은 많지만 성안에 전통마을이 남아있고 마을에 사람들이 사는 곳은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안동 하회, 경주 양동, 고성 왕곡, 아산 외암, 서산 해미읍성, 고창읍성 모두 둘을 충족시키지는 않는다. 낙안의 묘미는 성벽을 크게 돌며 성안과 밖을 함께 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둘레길을 걷듯 한가롭게 걷고 있었다. 비로소 이번 여행에서 보는 여유로움이였다.  동헌앞 큰 느티나무 두그루 아래에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여유로움이 보였다. 우리도 비로소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밪지 않고 시간을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눈길가는대로 발길가는대로 그렇게 과거를 현재를 즐겼다.


골목골목 가는 곳마다 발길을 멈추게 했고 적당한 높이의 담장과 싸리대문은 주인마다 개성 있게 꾸며놓은 마당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주었다. 주인의 부지런함은 정원과 잔디 그리고 텃밭을 조화롭게 꾸며놓았다.

서서히 어둠속으로 성벽은 몸을 숨겼다. 한낯의 더위를 온전히 받아낸 초가지붕은  저녁에 내린 비로 한숨돌렸다. 사람소리 대신 바람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성안을 가득 채웠다. 하루를 끝내는 건 커피였다. 주인할머니는 손님을 위해 안채마루에 커피와 종이컵을 두었다. 이것을 마루에 앉아 즐기며 하루를 끝냈다.  읍성을 품고 있는 높은 산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혼미한 정신을 깨웠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려 별을 보이지 않았지만 방안에는 별보다 이쁘고 고운 이 두명이 깔깔대고 웃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시골을 싫어하는 아내도 이 공기의 느낌이 좋아 시골로 이사갈까 하고는 웃어 넘긴다. 방문을 여니 비가 내린다. 낙안 모든 초가집 아래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기왓집에서는 처마끝으로 쉴세없이 빠르게 떨어지던 빗방울이 초갓집 지붕을 만나니 천천히 쉼호흡 하면서 내렸다. 느림이 주는 마음의 평화를 이곳에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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