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천탑의 전설 운주사
약 20년전 쯤 대학교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무작정 따라기만 하면 되는 답사를 다녀왔다. 그 중에 하나가 운주사였다. 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혼자 일어서지 못하는 불상들은 길가 바위에 기대어 있었다. 그리고 따라오는 전설과 와불에서의 사진촬영.
그후 누군가 무슨 절이 제일 좋아요 라고 하면 운주사를 추천했었다. 너무 알려진 절은 이미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었고, 절이 주는 고요함과 바람소리 그리고 자연의 발걸음을 느끼기에는 사람의 목소리는 너무도 컸기 때문이였다. 운주사는 그런 곳과는 거리가 먼 곳이였고 종교를 떠나 또는 지식적 측면을 떠나 그냥 초등학생 수준의 작품을 보는 친근함만으로도 충분히 즐기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곳을 좋아했다.
역사를 중학교때부터 좋아하고 대학교도 관련과를 갔다. 답사도 새로운 경험이였고 재미도 있었다. 남들은 쉽게 가보지 못하는 곳을 가거나 알려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곳을 다녔다.
그러나 역사를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나 역시 순수 역사학도의 꿈은 먼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능력도 안됐지만 꾸준히 공부할 자신도 없었다. 다만 답사다니는 것만 남겨두었다.
어쩌다보니 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코스를 여러개 만들었고, 역사교사라 역사적 장소를 집어 넣는 것은 결국 내 욕심이였고 이후에는 흥미 위주의 곳을 더 넣었다. 그러나 빠지지 않고 여러 팀들의 코스에 반드시 넣은 곳이 운주사였다. 이번에도 2팀을 배치했다.
날씨 좋은 5월 운주사를 왔다. 맑고 투명한 초록빛 나무들이 먼저 손님을 맞이해주었다. 예전에는 없었지만 앞으로 나무들이 더 크면 좋은 길이 되겠구나 싶었다.
처음 만나는 9층탑과 그 뒤와 옆으로 늘어선 탑과 불상은 그대로였다. 각양각색의 개성있는 탑과 불상은 발이 가기전 이미 마음이 폴짝폴짝 뛰어 다녔다. 서둘러 보고 싶고 오래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누가 만들었지도 모르는 이곳에 먼훗날 누가 올지 모르는 사람에게 수수께끼 남겨놓은 곳, 운주사.
전설에 따르면 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에 의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천불천탑의 전설과 함께 하룻밤 사이에 모든 일을 해야하는 고단함에 가짜 닭울음소리로 착각을 일으켜 마지막 하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남은 미완의 장소, 언젠가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바뀐다는 전설이 있는 민초들의 희망이 이곳에 있다.
탑과 불상만드는 초보자들의 학원 아니면 연습의 장소였을까 아니면 신라말 고려초 이 지역에 살았던 호족이 과시용과 민심수습용으로 만든 장소일까 아니면 민초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여기다가 만들었을까 아니면 정말 외부에서 온 세력(몽고사람들이라는 설) 등 정말 다양한 상상력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탑과 그곳에 새겨진 다양한 무늬를 보고 다양한 손 모양을 하고 있는 불상을 보는 재미를 새삼 느껴보고 싶어 천천히 즐기면서 걸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불상에 동전이 붙어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기도일까? 재미일까? 이찌되었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은 좋은 것이며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보니 민초들의 꿈과 이상이 펼쳐지기를 바라며 만들었다는 것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평지에서 이제 와불가기전 학생들이 재미로 종을 쳤다. 야단 맞을까 떼로 숨어드는 모습이 재밌기만 했다. 야단을 쳤는데 또 종이 울렸다. 또 야단을 쳤지만 내 귀에는 듣기 좋았다. 절 양쪽 낮은 산이 소리를 증폭시키고 인간이 만든 종소리와 자연이 만든 소리가 만나 조화를 내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의 찌꺼기들이 훌훌 날아가는 듯 했다. 학생들 덕에 좋은 소리를 들어 기분은 좋았다.
일어서지 못한 부부 와불을 만나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칠성바위를 보고 밭에 심어진 옥수수를 보며 끝을 맺었다. 부처님의 기도와 웃음을 보며 자라는 옥수수는 가지런히 바람에 흔들리며 부처님에 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