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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Nov 15. 2015

학생에게 비밀 편지를 받다

  예전에 내가 아주 젊었을 때 기간제 교사로 있을 때, 나보다 훨씬 더 멋진 선생님을 여고생들은 참 많이 따랐다. 그러나 나에게도 꽤 관심 있어하는 그런 학생들이 있어 당시에 유행했던 세이클럽으로 채팅을 하거나 아님 메일을 자주 주고 받았었다.  

그때는 여고생들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세대 차이라기보다는 세대 공감을 할 만큼이었으니 그런 편지나 대화는 그리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고 오히려 편지가 오면 답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라 정말 열심히 답장을 잘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학생들과 편지나 작은 메모를 주고 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 일이었다.


  시골의 작은 학교를 떠나 청주의 일반계 고등학교로 옮기고 나서 여학생들 중에는 꽤 나를 잘 따르는 학생들이 있었다. 일종의 매니아층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모르지만 나를 좋아해주는 그런 학생이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름으로 놀렸던 기억이 있었는데, 별로 신경쓰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 거짓말을 보태 거의 매일 나의 책상으로 왔던 학생이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화를 주고 받고 수업들어가기 전에 나의 짐들을 들어주었고 교실로 걸어가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에 대화를 했었다.  지금은 무슨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 학생에게는 꽤 많은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수업시간에도 혼자 빙그레 웃는 일들이 있었고 눈이 마주치면 가끔 같이 웃어주는 그런 학생이었다.   


  1년의 공백을 두고 3학년이 되었을 때 그 학생을 다시 만났고 예전보다는 아니지만 가끔은 나에게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가곤 한다.

여전히 수업시간에는 반달 눈으로 빙그레 웃고 있었으며, 나 역시 가끔 지긋이 웃어주곤 한다.   

이 학생은 내가 이 학교로 온 첫해 나의 생일에 케익을 선물한 학생이며, 그 다음 해에도 내 생일을 기억해 무언가를 주고 간 학생이고 올해는 스승의 날이라고 두툼한 편지를 한장 주고 같다.  

대충의 내용은 이 학교를 몰랐고 친구도 없어 힘들었는데, 선생님을 만나서 적응을 할 수 있었고 심지어 국사 시간만을 기다렸다는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내가 어떤 행동과 말들이 그렇게 학생에게 삶을 살아가는 약간의 동력을 제공해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힘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내 삶에 꽤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런 학생이 뜬금없이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오늘 저녁 바삐 모임을 갈 준비를 하는데 불쑥 곱게 접힌 편지를 한장 주고 갔다.  내용의 의미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이 잘 정리가 안되는 그런 내용이었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남학생을 알게 되면서 일어나는 복잡한 심정들과 그런 것들을 자신의 감정이나 능력으로 어떻게 할수 없는 것에대한 실망감, 좌절감 그리고 불안등으로 공부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이런 내용들을 써야 하는데 빙빙 둘러 쓰거나 표현을 억지로 억제하고 있음을 나는 이해했다.     


  나는 차를 타고 이동 중에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어떤 방법으로든 힘을 내보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가뭄으로 한동안 세상이 말라가고 있었고 거리의 나무들은 생기를 잃고 가지와 잎을 축 늘어뜨리고 있을 때도 나무는 생기를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기에, 오늘처럼 온 대지를 적시는 장맛비를 맞으면서도 다시 생기를 찾았으며, 장맛비를 맞으면서 그것에 대해 저항하거나  그렇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에게로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한방울 한방울 그렇게 받아드리고 흘러서 다른 곳으로 보내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주변의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학생에게도 지금의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자신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지금의 고민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신의 삶에 타인을 억지로 끌어들이지도 말고, 나를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지도 말고 자신을 지키면서 주변을 보듬는 방법 어렵지만 지금은 그러한 것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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