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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Nov 17. 2017

괴산으로 가을 답사를 떠나다

-연풍성지, 마애불좌상, 각연사, 홍범식 고택-

충주에서 문경사이에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곳 손바닥만한 평지에 사람들은 삶의 뿌리를 내렸다.  주변을 연결하는 길이 없다면 연풍은 영락없이 공중에 떠있는 마추픽추와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괴산읍내에서 연풍으로 뻗은 길은 몇해전 공사가 마무리되어 시원스레 속도를 내며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산의 중간부분을 지나는 듯 뻗은 길은 멋진 드라이브 코스가 되었고, 가을에 만난 연풍의 산들은 강원도 못지 않은 단풍을 자랑하며 뽐내고 있었다. 단풍으로 물든 사이사이로 일교차를 이용한 사과 과수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길가 대로변에는 사과를 파는 가게가 두 곳이 있으며, 지난번에는 소나무 과수농원에서 파는 사과를 사먹었다. 부부와 아들 한명이 사과를 파고 있었는데, 약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가족이었다. 이곳에 왔으니 한번은 팔아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과를 샀는데, 사과는 맛이 좋았다.


그 길 끝에서 좌로 돌면 충주로 오른쪽으로 돌면 문경으로 가는 길 가운데 연풍이 있다. 연풍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기 위해 군데군데 집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산골마을은 동막골처럼 시간은 느리고 천천히 흘러갈것만 같았고 읍내의 낡고 헤진 건물들은 이곳에선 너무 잘 어울렸다.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80년대를 회상하는 분이라면 이곳은  꽤 매력적인 곳일 수도 있다.


나는 이곳에서 뜻하지 않게 약국을 들렀다. 약국이라기 보다는 약방에 조금 가까웠다. 약이 잘 갖추어져 있지도 않고 약간의 어둠침침한 그런 분위기였다. 내가 들어섰을때 노신사 두분이 주인과 친구로 말벗을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있어도 손님 한명 오지 않을 것 같은 옛스러운 약방에 낯선 이방인이 들어서니 주인은 나를 뻔히 쳐다보았다. 나는 연고를 부탁했는데 주인은 이곳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등산하러 온 것 같지는 않다고 물었다. 나는 이곳에 여행을 왔다는 말과 함께 연고를 받았다. 묘한 느낌, 영화에서의 어떤 장면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

김 모락모락 해장국

이곳에서의 본격적인 첫 일정은 해장국으로 시작했다. 선지와 올갱이를 선택할 수 있었고 김치는 셀프인 이곳에는 그래도 몇몇 손님이 있었다. 우린 한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막 마치고 있을 때 오늘 만나기로 한 일행을 우연히 이곳에서 만났다. 맛집인가 보다. 올해 가장 춥다는 날 바람도 몹시 불어 추위를 더 느낄 때쯤 김이 모락모락나는 해장국은 피로함을 없애주었고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맛을 보고 온 것은 아니고 지난번 왔을때 이곳에서 밥먹자고 미리 점찍어 둔 곳인데 실망스럽지 않았다.

연풍성지

밥을 먹고 첫 장소 연풍성지를 갔다. 약속시간이 아직 남았지만 추위와 함께 긴장감이 몰려들었다. 답사를 안내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성지는 모르는데다가 연풍의 기록은 썩 많이 남아있지 않아 동료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 궁금했다. 이곳을 안내할 사람을 급하게 억지부러 부탁을 했는데, 준비를 많이 못했다고 야간은 걱정스러운 말을 하였다. 바람은 단풍구경도 귀찮게 할 정도로 불었다. 성지안내는 형구돌에서 시작했다. 천주교도를 간단하게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곳에서만 4개가 발굴되었다. 그중 하나는 절두산에 가 있다. 돌에 목과 뼈가 부러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잔인하다. 그리고 이어진 큰 예수님상을 통해 성경의 이야기를 듣고 그 옆에 놓여진 큰 돌들과 순교 이야기를 들었다.

형구돌

여기까지는 그동안 몇번 여기를 왔을때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뒤에 이어진 것들은 처음이었고 역시 동료의 능력에 또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 출신은 성자 황석두 일명 루카의 동상을 지나면서 그동안 눈여겨 보지 않았던 동상 손에 있는 붓과 종이는 바로 루카가 성경책 번역을 많이 했다는 것을 상징한다는 설명을 듣고 귀가 번쩍 뜨었다. 또 5명의 성인상 앞에서 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 그들은 선교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것을 다짐했다는 이야기에 또 놀랐다. 가장 쇼킹한 것은 성지에서 향청가는 길에 한번도 못 본 대주교의 동상이였다. 종교에 관심없으니 그냥 지나쳤을 것 같지만 무얼 꼼꼼하게 보지 않는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 주교가 일제시대 일제협력자이며 독재정권에 협력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성지에 있는 각종 상징물과 인물을 연결시켜보니 스토리가 굉장히 풍부해졌다. 답사에도 품격이 있다는 말을 느꼈다. 예전에는 평화로움이 좋았고 큰 나무들이 쉴 곳을 주는 곳이라 좋았다면 이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까지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연풍향청

연풍성지 맞은편에는 연풍초등학교가 있는데, 그곳에는 연풍동헌이 있다. 동헌이 역사적이라기 보다는 단원 김홍도가 정조 어진을 그리고 난 후 이곳 현감으로 왔던 스토리가 있다. 김홍도는 중인 신분으로 이곳에 와서 양반들과 함께 어떻게 지냈을까?

동헌

두번째 장소 연풍 마애이불병좌상을 보러 갔다. 읍내에서 차로 5분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여름에는 소나무 가지들 때문에 잘 가까이에서만 보이던 것이 가을이 되니 선명하게 불상이 드러났다. 맑고 깨끗해진 불상을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고려초기 불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마애불에 새겨진 이불병좌상이다. 나옹대사와 관련있으며 오른쪽 불상의 코가 빠졌는데 현대적으로 성형하듯 이쁘게 다시 코가 끼워져 있었다. 마애불에 대한 전반적 이야기, 채색된 마애불, 화불, 양옆 제자들.  법화경과 관련한 다보탑과 석가탑이야기, 마애불이 유행한 중국 북위 효문제 시기 이불병좌상은 그의 조모와 함께 권력을 누린 땅에 내린 두개의 권력을 두 불상으로 형상화 했다는 이야기, 고려시대 중부지방 불상의 특징 등에 이야기를 했다.  

원풍리이불병좌상

마애불을 보고 각연사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절 중의 하나다. 번잡스럽지 않은 점이 이곳을 끌리게 했다. 큰 길가에서 빠져나와 산속을 향해 가는 길은 공사로 인해 꽤 넓어져 있었다. 산골짜기에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원의 삶을 꿈꾸었는지 몰라도 제법 여러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무들은 잎을 잃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여름날 풍성한 나무 잎으로 덮인 길을 상상할 수 있으니 여전히 아름답고 호젓한 길임에는 분명했다. 각연사 대웅전 앞 마당은 탑 하나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대웅전은 조선후기 건물인데, 건물에는 각종 동물 형상 등이 조각되어 있어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조금 할 수 있다. 그리고 불상 옆에는 이곳을 만든 유일대사라는 이야기와 그것이 아니라 달마상이라 전하는 이야기가 있는 상이 하나 있다.

비로전과 보리수

각연사의 보물은 비로전에 있는 비로자나불상이다. 비로전을 받치고 있는 돌들은 신라사대부터 사용된 것이라 전하고 있다. 비로전 옆에는 보리수 나무가 호위무사처럼 늠름하게  서 있고 그 건너편 한쪽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두었는데, 자세히 보면 금붕어가 있다. 스님들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건물은 조선후기 것이지만 안에 있는 비로자나불상은 고려초기의 작품이다. 지금이야 불상에 누가 장난을 쳤는지 모르지만 검은 머리에 까만 수염을 하고 빨간색 립스틱을 발라 놓아 옛모습을 잃어버렸지만 불상을 받쳐놓고 있는 대좌는 명품이다. 구름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사자머리는 익살스럽고 용맹스럽다. 구름과 사자를 함께 조각하는 것은 우리 나라만의 특징이다. 그리고 제일 밑 하단에는 사람 몸에 새의 발과 날개가 달린 가릉빈가 2개가 조각되어 있다. 예전에는 그냥 보고 갔던 것을 무언가를 찾아서 공부하고 가니 불상을 보는 눈이 한빰 높아졌다. 불상에 가릉빈가를 새겨놓은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했다.

귀부

비로전을 빠져나와 칠보산쪽으로 등산하다 작은 개울을 건너고 밭을 지나면 목이 없는 귀부가 하나 자리잡고 있다. 안내판도 하나 없어 아는 사람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는 곳, 예전에는 버려진 밭에 무성히 자란 풀들에 의해 감히 엄두도 못냈던 곳을 이제는 길이 생기기는 했다. 귀부의 꼬리와 발톱 등에 새겨진 무늬들은 금방 만들고 간 것이라 해도 믿을 만큼 생생하게 남아있다. 귀부를보고 부도 2개를 보고 꽤 많이 걸어 평지가 끝나고 경사진 등산로를 만날 때쯤 통일대사 탑비가 서 있다. 탑비는 마모되고 떨어져 나가 글씨를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광종때 만들어진 귀부는 용감한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다. 통일대사는 중국을 유학갔다와서 고려 태조와 협력했다가 광종때 돌아가신 인물이다.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정도의 탑비와 산 중턱에 남아있는 승탑으로 봤을 때는 꽤 지명도가 높은 대사가 아닐까 한다.

통일대사탑비

산속의 어둠은 생각보다 빨리왔고, 서늘한 기운으로 가만히 서 있으니 추위가 더 많이 느껴졌다. 이제 우린 읍내로 가서 밥을 먹으러 간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홍명희와 유근의 이야기가 있는 제월대로 가기로 했다. 제월대 주차장에는 기공을 연습하는 수강생들이 막 수련을 마치고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번 왔을 때 해질때 쯤 오면 좋겠다 했는데, 딱 맞춰서 도착했다. 제월대 고산정에 들어서니 해가 서쪽으로 지고 있었고, 괴강과 괴산들을 만나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괴강에는 억새풀들이 이제 힘을 잃고 있었지만 억새풀이 힘있게 흔들릴때는 더 큰 매력이 있을 것 같다.

고산정

일행들은 고산정에서 바라보는 괴산의 풍경에 푹 빠져 멋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나는 사실 그렇게까지 멋진 지를 잘 모르겠다.

이제 밥먹으러 간다. 다래*에서 먹는데 버섯이라고 하는데 소간처럼 보이는 것을 처음 먹어 보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족발과 굽네**에서 술 안주를 샀는데,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쌍곡의 가을은 추웠고 고기 대신 치킨과 족발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밤은 깊어도 이야기는 끝이 날 줄 몰랐다.

소금강

다음날 우린 쌍곡계곡안의 소금강 절경을 보고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괴산의 명물 올갱이 해장국이었지만 해장국보다는 길건너편에 있는 청주오믈렛이 더 인기를 끌었다. 청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오믈렛을 맛보기로 사와 먹었는데, 다른 지역에 사는 일행들이 맛있다고 너도나도 사갔다. 우리 옆에서 밥을 드시던 중년부부도 그것을 보고 오믈렛을 사가는 것을 보았다. 덕분에 시골동네 오믈렛집은 우리 일행으로 발디딜 틈이 조금 밖에 없었다.

오믈렛

그 덕분에 주인은 커피를 대접해 준다는 이야기를 했고 무려 커피를 14넉잔이나 준비해야 했다. 그러면서 청주에 있는 명물이 괴산까지 오고 앞으로 다른 지역으로 간다면 아쉬울 것 같았다. 일본은 지역 명물은 지역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그곳에 반드시 가야만 맛을 볼 수 있어 관광객들을 유인하는데, 우리 나라는 조금 유명하면 전국 체인점을 만드니 지역색이 없어지는 것이다. 청주에서만 맛 볼 수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것을 먹기 위해 청주에 오지 않을까?

홍범식 고택

오믈렛을 먹고 마지막 코스 홍범식 고택을 갔다. 넓은 대지에 잘 갖추어진 한옥이었지만 앞으로 도로가 높게 나면서 집은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홍범식은 홍명희의 아버지로 금산군수를 지내다가 한일병합때 자결한 인물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친일이고, 본인은 독립운동을 했으니 3대의 운명이 얄꿎다.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는 북한에서 활동을 하였고 그 후손들도 북한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한동안 금기시된 인물이었고, 지금도 명성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이제는 헤어져야 하고 내년을 기약했다. 아직 괴산을 많이 보여주지는 못했다. 괴산의 한쪽 모퉁이를 돌았을 뿐이다. 다음엔 또다른 괴산을 보여줘야 겠다. 지금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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