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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Mar 30. 2018

옥천 용암사

풍경이 아름다운 절

어디를 어떻게 가는가의 문제는 결국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걸어서 가는 것과 차를 타고 가는 것의 장단점은 분명히 있고 어느 것이 더 좋은가에 대한 답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산 아래에 차를 세웠다. 절 앞까지 차를 타고 가는 편안함 보다는 절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즐길 수 있는 생각의 여유로움과 부처님을 만나기까지의 약간의 고행이 있어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마끝 맑은 하늘

따뜻한 햇살에 따뜻한 공기는 이제 봄을 알리는 듯 했지만 막상 차에서 내려보니 햇살과 공기속에 차가움이 가늘게 섞여 와서 몸을 조금씩 움츠려 들게 했다. 산의 나무들은 봄바람에 속지 않고 나무껍질 속에서 더 긴 기다림을 보내고 있었다. 냇가의 물은  졸졸 소리를 내며 적막한 산속에 유일한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지만 그 역시 겨울이 남아있는 소리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선택했고 자연속으로 걷고 있었다. 차 한대가 지나갈 정도의 길은 훼손되었다기 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딱 양보한만큼 경계선이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바람과 나무냄새였다. 흑백의 산이 봄을 기다리는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그동안 겉으로 보기에 삭막해 보여 초록이 시작되기전에 산에 다니는 것은 별로다 라고 생각했던 예전의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용암사가는 길

바람은 산에서 길을 잃어 멈추었고 물은 하얀 얼음 밑에 숨었다. 겨울은 두꺼운 얼음을 겹겹히 쌓아두었다. 나는 나무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갈길을 찾았고 몸의 온기는 두꺼운 외투를 벗게 했다. 오랜만에 산길을 걸으니 숨은 가빠오고 다리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혼자이기에 내가 즐기고 싶은 속도만큼만 움직이면 되기 때문에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다.

얼음밑으로 물이 흐르고


20분 남짓 걸으니 인공의 모습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연은 그만큼 더 상처를 입고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붉은 황토층을 핥퀴고 간 곳에 자연은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다.

절아래 주차장

절로 들어가는 길은 마치 잉카인의 돌담처럼, 우리의 산성처럼 되어 있었고 돌담 가운데를 통과하니 법당이 보였다. 하늘과 법당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다른 비율로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법당의 문은 활짝 열려 부처님도 따뜻한 햇살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부처님이 바라보는 세상 나도 고개돌려 바라보니 마음에 막힘이 없었다.


법당  문을 열고 힘들지 않을 만큼 절을 하고 방석에 앉아 마음수련 책을 읽었다. 좋은 말들이 머릿속에 지나갈 뿐 담기지는 않았다. 마음속에 담을 그릇이 없어서 일 것이다. 다음에 올때는 비우고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처님 시선으로 법당문에서 바라 본 세상은 무얼 비우고 담고 하는 수준을 넘어 세상 어느 곳에도 나의 존재는 없어지고 자연만이 남아 있는  듯 했다.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첫번째 즐거움이다.

대웅전에서 본 세상

작은 절이지만 많은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경내를 두르고 있는 꽃담에서 두번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몇가지 무늬를 넣은 담은 지루함을 없애고 눈길 한번 더 가게 만들었다. 자연과 절의 경계를 두른 듯  하지만 시선의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았고 인간의 작은 마음과 자연의 큰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하는 것 같아 한참을 안과 밖을 번갈아 시선을 두었다.

꽃담

그 오른쪽으로는 소나무가 먼저 인지 탑이 먼저 인지 알 수 없는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듯 한 나무와 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세번째 즐거움이다. 경주의 볼륨감 넘치는 균형있는 탑은 아니지만 옆에 서 있는 나무 마냥 딱 서 있을 수 있는 만큼의 크기로 두개의 탑이 나란히 서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있었을까. 탑에서 솔향이 나는 듯하고  나무에는 겸손함이 묻어났다. 둘은 앞으로 얼마나 함께 이곳을 함께 할까.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때 의신이 세웠다고 전해지지만 그 흔적은 없고, 이 탑은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쌍탑

탑옆으로는 등산객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보였다. 순간 정상을 향한 마음이 생겼지만 이내 가라앉히고 마애불을 보러갔다. 탑에서 곧장 마애불로 가는 길이 있는데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날카로운 철조망  줄이 있었다. 나는 위험한 길을 건너 마애불을 보러갔다. 탑에서 내려와 다시 반대편으로 가는 것이 귀찮았지만 그만큼 위험은 했다. 길을 막아놓은 것은 잘 한 일이였다. 계단의 끝에는 겸손하라는 의미로 나무가 가로막고 있었다. 고개를 충분히 숙여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곳을 지나니 바로 작은 마당을 두고 바위에 부처님이 있었다. 이곳에서 만나는 네번째 즐거움이다.


마애불은 채색이 그대로 남아 아주 붉었다. 작품이 아주 뛰어나진 않았지만 이곳에 자리잡고 있는 불상은 복을 아주 많이 받은 것 같다. 이 마애불은 신라말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의태자가 남겼다는 전설이 있다. 망국의 한을 가진 마의태자는 우리나라 곳곳에 그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마애불이 보는 세상은 대웅전 불상이 보는 세상보다 더 넓고 컸다. 인간세상에서 빠르게 달리는 기차와 차도 장난감이였고 높이 올린 아파트도 레고였다. 햇살이 내려와 눈이 부셨고 세상은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직접와서 보니 일출과 일몰이 멋진 절로 미국 CNN에까지 소개된 것에 수긍이 갔다.

마애불에서 바라 본 세상

마애불에서 내려와 천불전으로 가는 길에 작은 대숲을 만났다. 원래는 대숲을 지나 마애불을 만나는 것인데 반대로 봐도 소소한 감동은 있었다. 크다고 다 멋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주변과 어울려 자라고 있는 작은 대숲이 누가 심었는지  어쩌면 바람이 씨앗을 물고와 심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 다섯번째 즐거움을 받았다. 대숲앞에서 물이라도 한잔 한다면 고민은 잠시 어딘가에 두고 와도 될 것 같았다.

마애불과 천불전 사이 대숲

천불전 지붕위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눈이 녹아내리는지 얼음이 녹아내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천불전 앞 난간에서 바라본 세상과 천불전 끝에 서 있는 탑을 바라보는 것은 또다른 멋을 주었다. 어디에 포인트를 잡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용암사의  멋은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지겹지 않을 것 같았다.

천불전에서 본 탑

천불전 옆으로 산신각 오르는 길에는 마치 사람을 시험하는 관문을 상징하듯 앏은 판처럼 생긴 돌이 듬성듬성 서 있고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런 바위는 운주사 절에서나 보던 것이였다. 그러고 보니 얇은 바위  또는 돌들이 이곳에는 곳곳에 서 있었다. 마치 선돌처럼. 이 바위들을 만나는 곡선의 돌 계단이 이곳에서 만나는 여섯번째 즐거움이다.

산신각 가는 길


마지막은 바위 위에 올려진 장독대이다. 크지는 않지만 절의 크기만큼 큰 장독대의 모습은 아기자기한 옛 뒷마당의 장독대를 생각나게 하는 것 같아 또하나의 즐거움이였다.


절을 내려와야 한다는 것은 또 올라가는 즐거움을 주지만 언젠가 하루종일 이곳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해와 달 그리고 바람의 움직임 속에서 변해가는 이곳의 모습을 한번 즐겨보고 싶다. 그때는 부처님이 바라보는 세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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