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불국사에서 멀지 않은 조그만 시골마을이였습니다. 좁은 길을 따라 이빨 빠진 듯 집들이 있었습니다. 다만 경주라는 도시의 특성상 오래된 기와집이 몇 채 있었습니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내부의 모습을 자세히 볼수는 없었지만 지붕의 규모로만으로도 큰 집임을 알수 있습니다. 문틈으로 살짝 본 정원의 나무들은 이 집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사람을 볼 수는 없었지만 신발이 놓여져 있고 마루에는 무언가 말리고 있어 빈집이 아님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입구를 들어서면 보이는 작은 연못과 덕봉정사라고 쓴 건물이 보입니다. 꼭 그곳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산책삼아 한번쯤 가볼 만 곳입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마을에는 아주 좋아 보이는 전원주택들이 몇 곳있습니다. 토함산 자락에서 내려온 줄기에 자리잡고 있어 뒤로는 산을 앞으로 넓은 들이 시원스레 보이는 곳이며, 사람들로 북적거리지 않으면서 도심과는 가까운 곳이라 그런 것 같았습니다.
대문을 들어서 바로 차를 세우니 감나무 한그루와 수돗가가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훌륭한 물놀이 장소를 제공하기 충분했습니다. 지붕이 낮은 옛집은 전통가옥과 현대식이 섞여 있었습니다. 일자형 집으로 마루가 길게 있고 길게 뺀 처마가 비로부터 햇빛으로부터 마루를 보호해주었습니다. 넓은 마당의 잔디들은 여름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군데군데 죽어있었습니다. 앞집과 경계선에는 나무와 꽃들이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빨래줄에는 수건들이 널려있었습니다. 인상 좋은 주인 부부는 몇가지 주의할 것으로 알려주고 편하게 쓰라고 하시고는 가셨습니다.
방안은 3칸으로 한칸은 부엌으로 두칸은 방이였습니다. 주인부부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쓰시던 가구들이 그대로 놓여져 있었습니다. 오래된 물건은 천장에 그대로 드러낸 대들보와 창호지가 있는 문과 어울려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약 일주일을 살아갈 우리들의 짐이 자리를 잡았고 아이들의 미니풀장과 놀이도구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부엌에는 우리들의 먹을거리가 차곡차곡 정돈되었습니다. 냉장고 냉장실에 들어갈 것과 냉동실에 들어갈 것 밖에 둘 것이 정리하고 나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번 경주여행의 주제는 휴식입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쉬면서 산책삼아 시내로 가서 관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로 오후 늦게 선선해질 때 쯤 다니는 것입니다. 이곳은 경주시내와 감포의 거의 중간이라 어느 쪽으로 가도 힘들지 않게 갈 수 있습니다.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아파트에 살면 비가 오는지 잘 모르는데, 예전 고향집에 살때처럼 빗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시끄러움이 아니라 맑은 소리에 귀가 호강하며 자다깨다를 반복했습니다. 더위에 힘들어하던 식물들은 생기를 되찾았고 토함산에는 구름들이 속세와 구별하듯 걸려있었습니다. 빨래들은 다시 씻어 처마끝에 빨래줄을 매달고 널었습니다. 쫒기듯 퇴실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되니 여유로움은 더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삶은 이전의 삶과는 달랐습니다. 여행이라기 보다는 살아가기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황남빵을 먹었고 경주다방에서 첨성대라떼를 두번을 가서 기여코 먹는 행운을 누렸고 황리단길을 걸었다. 쪽샘의 발굴현장을 보았고 안압지 야경을 즐겼다. 서출지의 백일홍과 연꽃을 보았고, 다음에 오면 꼭 가자고 한 카페를 점찍어 두었다. 신들의 정원같은 삼릉 숲속을 거닐었다. 불국사에 역사 공부시키러 온 아버지의 정성을 보았고, 석굴암 가는 길은 역시 아름다운 산책길임을 느꼈고 종소리는 멀리 멀리 퍼져만 갔다. 감포의 거센 파도 속에 들어갔고 첨성대 앞에서 전동차를 탔다. 많은 일들을 휴식처럼 즐겼다.
경주를 여행하는 방법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많이 다른 것 같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내가 어떻게 즐기는가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도 달랐다. 다음 번에 경주에 온다면 어떤 모습의 경주가 보일까? 갈때마다 다른 모습의 경주는 새로운 것인가 아니면 내 나이가 다른 것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