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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Mar 01. 2018

하얀 속옷

어머니의 마음

방학이 다가오자 그동안 미루어 왔던 학교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학교 일을 끝내고 오면 아무 것도 하싫어졌습니다.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책꽂이 책들이 마음대로 분류되지 않은 채 꽂혀 있어도 보기만 합니다. 책상 위에 잡동사니 물건과 먼지가 뒤엉켜 있어도 그냥 보기만 합니다. 몇일전 라면 끓여 먹은 냄비도 싱크대에 그대로 있습니다. 방안 가득 쌓인 신문도 보입니다. 배란다 냉장고 옆 빨래통에 빨래도 수북히 쌓여만 갑니다. 힘들게 빨래를 산더미처럼 하고 나서 또 그냥 그냥 살다보니 어느 순간 빨래가 한가득합니다. 꾹꾹 눌러 담아도 빨래가 산이 되어 갑니다. 옷걸이에 빨래를 해야할 옷들도 주렁 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방학이 되면 집에 들고 가면 되지라고 위안을 삼으면서 말입니다.
 

대만으로의 여행과 컴퓨터 연수를 거치면서 극에 달한 빨래를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용 가방 한가득하고도 빨래통 한가득 담고 나니 겨우 정리가 됩니다. 고향집에 도착해서 풀어 헤쳐놓으니 방안 가득합니다.


아들의 게으름으로 쌓인 옷들을 어머니께서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께서 빨래를 하고 햇빛에 가지런히 말리기를 몇번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빨래가 뽀송하게 정리되고 가방과 빨래통에 가지런히 놓여졌습니다.


개학날이 다가오자 다시 빨래를 들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정해진 장소에 세탁물을 가지런히 담았습니다. 그러다가 졸업식 전날 햐안 와이셔츠를 입기 위해 런닝이 담긴 통을 열었습니다. 순간 햐얀 런닝이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새것이 아닌가 싶어 다른 것을 보니 똑같이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흰 런닝은 시간이 지나면 누렇게 변색되어 가는데, 나의 런닝도 변색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변색되어 가던 런닝이 햐얀 속옷으로 탈바꿈 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선 자식이 방안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을 때, 추운 겨울 밖에서 자식에게 햐얀 속옷을 입혀주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신 것입니다.


하얀 속옷을 입고 출근하는 저의 마음도 깨끗해집니다.
나로 인한 것이 아닌 부모님의 마음때문에....


2009.03. 덧붙어 새로운 곳으로 출근을 앞둔 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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