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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Jul 31. 2018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야기

괴산 쌍곡 바람소리

달구워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사그라들 쯤, 우리나라 사람들을 숨막히게 하는 새빨간 태양이 산너머로 넘어갈 쯤, 산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느껴질 듯 말 듯 할 쯤에 숙소를 나섰다.

아침부터 시작된 물놀이에 한낮의 뜨거움도 말리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놓여진 돗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전혀 부끄러움 없다는 듯 잠을 잔 나.
이제는 피곤한 듯 물놀이를 끝내고 빨리 자고 싶은  듯 딸은 여러 번 짐을 옮기는 수고로움도 마다하고 내 손을 꼭잡고 옆에 달라붙어 짜증내지 않고 걷다가 차를 타자마자 바로 잠을 잔 딸.

실컷 물놀이를 하고 이제는 숙소로 가서 티비를 보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며 서두르는 아들. 숙소와서 깔깔 웃으며 티비를 본 소원성취한 아들.

어제부터 물놀이 도구를 챙기고 아침부터 김밥싸고 애들 챙겨고 내가 자는동안 애들 데리고 놀다가 숙소와서 바로 꿀잠 잔 아내.


커피 한잔. 지금까지가 오로지 애들  맞춤 일정이였다면 지금부터는 아내 맞춤으로 보낼 생각이였다. 그동안 이런 곳에 여러 번 왔지만 한번도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애들 키만큼 자란 고추밭과 그너머로 나보다 큰 옥수수밭을 지나고 인도가 없는 국도를  달리는 차로부터 애들을 지키며 짧은 길이지만 맘을 놓을 수 없는 길을 걸어 카페로 갔다. 불꺼진 가게 문은 열려있었지만 문앞에는 7시까지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좀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라는 아쉬움은 야외 테라스로 발길을 옮기게 했다. 주인인 듯 손님인듯 한 부부가 빙수를 먹고 있었고 우리 애들은 매달린 새둥지 모양의 의자에 앉았다. 처음에는 아들이 앉았는데 딸도 앉겠다고 옆에 매달렸었다. 1인용이라 우리 부부는 번갈아 가며 앉으라 했고 테이블의 부부는 그냥 둘이 앉으라 했다. 딱 주인인 듯 했다. 나는 주인인 줄 알고 커피주문을 받길 바라는 말과 행동을 했지만 나의 의도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또 한번 문을 열었고 우린 주인도 없고 허락되지도 않은 불꺼진 가게에 그냥  앉았다. 아직도 에어컨의 냉기가 남아 있었다. 주문을 받는 곳은 어두웠고 메뉴판도 어두웠다. 이 어둠이 얼른 끝나기를 바랬다. 다만 허니브레드가 있는 곳만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작정 기다림은 이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꺼라는 아내의 직감 때문일 것이다. 남편이 커피숍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우리가 앉자마자 건너편 집에서 이쪽으로 오는 아저씨를 보고 얼른 일어났다. 마치 영업시간 끝났다고 알리러 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잠시 일이 있어 가게를 비운 것이라고 심지어 손님와서 고맙다고 까지 했다. 그리고 영업시간 7시는 겨울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해주셨다. 우리는 아이스 커피 두잔을 평소 취향에 맞게 라떼와 치노를 애들은 빙수를 시켰다. 얼마만에 먹어본 커피인가. 커피를 물 마시듯 들이켰다. 이 집을 전세낸 듯 우리가 떠날때까지 아무도 이 집을 찾지 않았다. 약간의 어둠이 계곡을 찾을 때  쯤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멀진 않지만 산에서 만나는 어둠은 빨리 그리고 짙게 찾아오기 때문에 애들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까페에서의 여유로움을 마냥 즐길 수는 없었다.


 올때는 보지 못한 밤나무 한그루를 발견했다. 나무에는 밤송이가 무수히 달려있었다. 아들은 가을도 아닌데 밤이 열렸다 했고 나는 길가에 있는 밤나무가 신기하다 했다. 고추밭과 옥수수밭에 둘러 쳐진 그물은 고라니  멧돼지 때문이라는 대화와 고라니는 세계적으로 보호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해종이라는 나의 부연 설명.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을 온가족이 항께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  이것이 행복이다. 소확행이다.


평소에 아버지께 전화를드리면 늘 마지막은 '애들 간수잘해라' 하셨다. 그리고 추석때 손자를 보고 '이제는 애들 다 키웠네'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 그때보다 좀더 자란 손주들을 보셨다면 또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요?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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