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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Oct 13. 2015

홍시

일상적인 일이 특별한 체험으로

보은을 갈일이 생겼습니다.

작년 더운 여름 다른 이와 다녀갔었던 곳을 가족과 함께 왔습니다.

순전히 나의 일로 인해 온가족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날 마신 술이 덜 깨어, 아침에 눈이 번쩍 떴지만, 마감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여, 아내에게 운전을 부탁했습니다.


조선시대 옛 문인들이 양의 창자와 같다고 표현한 피반령을 넘어 보은의 회인을 갔습니다.


풍림정사, 조선말 보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던 호산 박문호가 제자들을 길렀던 곳이 목적지였습니다.

은행나무 키 큰 한그루가 오른쪽에 문패처럼 서있으며, 길 건너 논들에는 벼들이 심어져 있었는데, 계절의 변화에 따라 얼마나 변한 모습으로 되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은행나무잎은 노오랗게 물들었고, 몸으로 공기로 햇살로 키워낸 은행은 알알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세상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놓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 벼들은 가을 햇살에 노오랗다 못해 샛노랗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산과 산비탈을 기대어 앉아있는 풍림정사는 가을 햇살 아래 몸을 낮추고 햇살을 가득 품고 있었습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담벼락을 주인을 허락하지 않은 대문의 자물쇠를 대신해서 손님들의 시선을 안으로 모으고 있었습니다.

필요한 사진을 앞 모습을 찍고 뒷모습을 찍고 클로즈업에서 찍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산비탈을 내려오는 순간, 땀방울 연신 눈을 찔렀지만 햇살 한주머니를 품고 있는 홍시나무가 보였습니다.

풍림정사 뒤쪽의 한 모퉁이에 서있는 홍시나무에는 제법 많은 홍시들이 빨갛게 익었고, 일부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고 다니면서 누군가의 먹이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한손 뻗어 낮은 곳에 있는 홍시를 따려고 했으나 내 욕심만큼 멀리만 있었습니다.

아들이 가지고 노는 잠자리채를 급히 빌려 기와담을 사이에 두고 홍시와 나의 대결은 승자 없이 바닥을 뒹굴었습니다. 나는 급히 홍시 2개를 주어 잠자리채에 담아오면서 아들에게 마치 아주 큰 무엇인양 가져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들은 처음 보는 과일과 처음 들어보는 과일 이름에 신기해하면서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가서 홍시를 아이들에게 먹였습니다. 진한 홍시 냄새만큼 물러버린 속살은 아이들의 입을 빨갛게 만들었습니다.

맛있다는 아들, 더 많이 따고 싶다는 아들에게 다음을 약속했습니다. 

어렸을 적 시골집 뒷마당에는 홍시나무 한그루가 서있었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주 어렸을 적 홍시에 대한 욕심을 품고 있을 때부터 키가 아주 컸습니다.

나는 가을이면 긴 대나무 작대기 중간을 벌려 그곳에 꼬챙이를 집어넣고 홍시를 따거나, 작대기 끝 부분에 양파망으로 만든 주머니를 만들어 홍시를 따서 먹었습니다.

나의 이때 감정은 중학교 때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도시에 생활하는 아들에게는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경험한 이런 소중한 것들을 아이들에게도 전해주어서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아이들과 내가 함께 공유하는 하나의 일이 이렇게 우연하게 만들어진 가을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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