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태산휴양림에서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어딘가에선 빨간색으로 어딘가는 노란색으로 나무에 매달렸다. 바람이 불어온 흔적은 여기저기 색깔로 남았고 자연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흔적은 남아있되 볼 수는 없었다.
세상에 들리는 유일한 소리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물소리 밖에 없었다. 깊은 산속 어딘가에서 시작된 작은 물줄기들은 나무와 돌과 흙을 만나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하면서 인간세계로까지 왔다. 산모퉁이를 깎아내고 자리잡은 휴양림앞으로 갑자기 떨어진 물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제법 많이 모인 물들은 또 어딘가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에게 아낌없이 주면서 흘러갈 것이다. 바다로 흘러가거나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빨리 또는 느리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주어진 인생길에서 땅속으로 갈 때와 냇가를 흐를 때 직진할 때와 돌아갈 때를 적절히 알고 모험을 떠나는 것일게다. 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밤새 빗소리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시끄러움과는 달랐다.
구름은 산의 정상부를 가려놓았고, 속세로부터 우리를 가려주었다. 숲은 하루가 다르게 여름내 숨겨둔 자신의 다른 면을 뽐내고 있었다. 나무들은 해마다 이맘때쯤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어쩌면 4계절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던 아니던 간에 변하는것도 변치않는 것도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가꾼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비바람도 견뎌야 하고 무더위와 추위도 견뎌야 한다. 자신의 몸에서 자라는 나뭇가지, 잎, 열매, 꽃들을 지키고 함께 보듬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혼자만 살겠다고 주변의 것들을 무시하면서 살아서도 안된다. 경쟁이 필요하지만 주변을 파괴하거나 부자연스럽게 해서는 안된다. 어울림속에서 온전히 자신을 지키고 너와 내가 함께 존재감을 드러낼때 오는 뿌듯함은 나에게도 나를 보는 누군가에게도 기분을 좋게 할 것이다.
도시의 삶이 각자의 것이라면 이곳은 온전히 가족의 삶이다. 칸막이 하나없는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것, 같이 할 것들이 많다는 것, 삶이 단순하다는 것, 대화의 방식과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 함께 손잡고 숲속을 걷는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아낌이고 가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