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 부스를 운영하면서
영화 ‘은교’에서 주인공 박해일의 대사 중에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는 벌이 아니다’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사의 앞부분을 나에게 적용해 본다면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교사로서 살면서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지위와 넉넉하지는 않지만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경제적인 보상은 나만의 노력으로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 온 사회적, 문화적 자본의 혜택을 내가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한도 내에서 우리 사회에 일정 부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 대사의 뒷부분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차별당하는 약자들이 결코 ‘벌’ 받는 것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 ‘고 생각한다. 그리고 ‘약자들의 아픔에 눈길을 주고 공감해주고 도움의 손길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약 7~8년 전쯤 모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1학년에게 한국사를 가르치면서 한국 근현대사 부분이 너무 짧아 학생들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게 수행평가로 ‘한국 근현대사 UCC 만들기’를 하고 몇 가지 주제를 제시하였다. 그중에서 꽤 많은 학생들이 일본군‘위안부’, 친일파 등의 정치적·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주제들을 선정하여 영상을 만들어 왔다. 그중에 상당히 인상 깊은 것들은 축제 때 상영을 하였는데, 많은 학생들이 교실에 와서 자기들이 또는 친구들이 만든 작품들을 보고 갔다. 일부 학생들은 나중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외침인 수요집회에 직접 참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결코 미성숙하거나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었다. 적절한 주제와 기회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학생임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중학교에 계속 있으면서 중학교에 적응하는데 급급하였고, 변화하는 학생들과 교직사회에 적응하느라 학생들과 함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다만 역사 수업에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역사가 결코 먼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나와 밀접하게 관련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매 수업시간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주는 발문을 제시하고 모둠원들이 함께 고민하는 것, 찬반이 엄격하게 구분되는 주제에 대한 입장 쓰기,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여러 주체의 입장에서 글쓰기 등에 중점을 두고 수업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이것 이상의 무엇인가 필요하다는 갈증을 느꼈지만 그 실체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마침 모중학교에 오게 되었고, 학년 초에 축제 때 일본군‘위안부’와 관련된 부스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실천의 첫걸음으로 도서관 담당교사에게 일본군‘위안부’ 관련 도서를 많이 신청하여 구비하도록 해놓고 역사과 독후활동 수행평가 권장도서 목록에 일본군‘위안부’ 관련 도서를 꽤 많이 넣었다. 1,2학기 2, 3학년에게 독후활동 수행평가로 제출한 작품 중에 전시해도 될 정도의 작품들이 모였다.
나의 소박한 부스 운영은 도서 전시, 작품 전시, 대형 나비 모자이크 인증샷 정도였고, 여건이 된다면 뱃지 제작까지 하는 것인데,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아서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런데 학생회 담당 선생님께서 학생회와 같이 부스 운영을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고, 마침 학생자치참여예산도 있으니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요구만 하면 협조하겠다고 했다. 학생대의원회가 열리는 날 부스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고, 학생회에서 같이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축제 담당 교사로부터 축제 예산이 많이 있으니 하고 싶은 부스가 있으면 마음껏 예산을 신청하라고 연락이 왔다. 이제 내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내 머릿속에는 ①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명단 붙이기, ②일본군‘위안부’ 관련 도서 전시, ③일본군‘위안부’ 관련 학생 작품 전시, ④종이 소녀상 만들기, ⑤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쪽지 쓰기, ⑥일본군‘위안부’ 팔찌 만들기, ⑦뱃지 나누어 주기, ⑧대형 나비 모자이크 인증샷 찍기 순으로 정리가 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일본군‘위안부’ 영상 시청도 준비해 두었다.
우선 뱃지 제작에 들어가는 예산도 지원해준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디자인 공모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입시와 2학기 기말고사가 겹치면서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하고 당선작을 선정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했고 학생들의 관심도 분산되어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술선생님(학생회 담당선생님이시다)께서 그림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디자인 2개를 완성하고 뱃지 제작업체에 의뢰를 해서 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평소 기술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팔찌 만들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이번 축제 때 일본군‘위안부’ 기림 팔찌 만들기를 같이 하자고 제의했고 흔쾌히 도와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이런 준비와는 별도로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전부터 해왔던 일본군‘위안부’ 특별 수업을 진행하였다. 일본군‘위안부’ 관련 자료를 만들어 함께 읽어 보고 드라마 ‘눈길’을 함께 보았다. 그리고 학습지를 만들어 글 쓰는 수업까지 진행하였다. 이후 학급에서 단합하여 대형 나비 모자이크를 완성하였다.
모든 준비는 끝났고 기림 부스를 어디서 할 것인지 까지 정해졌다. 그런데 직접 장소에 가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내가 판단을 빨리 내려주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도넛 모양의 대형 책상과 의자 그리고 벽이 나에게 펼쳐졌다. 입구부터 시계 방향으로 도서 전시 – 종이 소녀상 만들기 –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쪽지 남기기 포스트잇 두기 – 팔찌 만들기 – 뱃지 나누어 주기 순으로 배열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의자를 두어 하드보드지와 우드락으로 만들어진 학생들 작품을 전시하고 입구에서 바라보는 정면 벽에 쪽지 붙이기 코너를 두고 입구에서 오른쪽 벽에 대형 나비를 붙였다. 그리고 바로 옆 실에는 영상을 시청할 준비를 해 두었다.
축제 당일 과연 학생들은 많은 부스 중에 이곳을 찾을까 걱정을 하면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이 많은 학생들을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도 문제였고 모든 것을 다 체험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종이소녀상 만들 사람들과 팔찌 만들 사람들을 구분했고, 부스 운영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종이 소녀상과 팔찌 둘 중에 하나를 완성한 사람에게 한해서 뱃지를 주었다. 오후에는 축제 공연이 준비되어 있어 오전에만 체험부스를 운영하였는데, 끝날 때까지 꾸준히 학생들이 방문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할머니들을 위해 적지만 소중한 돈을 기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부한다. 학생들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남겨놓은 쪽지를 수거해서 보았는데, 대부분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글들이었다. 역시 학생들은 생각 없는 ‘중딩’이 아니었다.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알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다. 이번 축제를 통해 올해의 아쉬운 점을 참고하여 내년에는 조금 더 지속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