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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Jan 29. 2016

할머니와 자짱면

  내가 어렸을 적에 자장면은 참 귀한 음식이였고,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중에 하나였습니다. 나 역시 언제부터 이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은 잘나지 않지만 무척이나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이야 별미로 가끔 먹는 음식이 되었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특별한 날만 먹을 수 있는, 가먹는 음식이지만 그 의미 자체는 너무나도 달라버렸습니다.   


  나는 어렸을 적 집을 떠나 어디로 갈 때는 항어머니보다 할머니랑 같이 했었습니다. 할머니도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 하셔서 많이 데리다녔습니다. 심지어 병원을 갈때에도 할머니께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어머니는 일하시느라 저를 데리고 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릴적 어머니는 늘 바쁜 분이셨습니다. 온갖 집안 일 뿐만 아니라 동네 품앗이를 다니시느라 낮에는 거의 집안계셨습니다.   


  한번은 이빨이 너무 아파서 밤새 끙끙 앓았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양치질이라는 것을 거의 해본 기억이 없으니 이빨이 아픈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밤새 끙끙 앓았다 결국 할머니와 함께 병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충치가 생긴 부분을 메우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때 나는 자장면을 사주는 조건으로 병원을 가서 치료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약속대로 자장면을 사주셨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재래시장의 골목길에 있는  맛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빨에는 아직까지 치료를 받느라 생긴 피와 솜뭉치가 입안에 물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걱정이 되어 몇번이고 이빨 치료하고 자장면을 먹어도 되는지 몇번이되물었습니다. 먹음직스러운 자장면을 한쪽에는 솜을 물고 다른 한쪽으로 자장면을 씹었습니다.

  그때 자장면은 한 그릇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는 돈이 아까워 배고픈 것을 참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한 집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선뜻 700원이나 하는 자장면 값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장면을 먹고 버스타고 돌아오는 길은 행운이 가득한 날이었습니다.   


  몇십년이 흘러 그 가게를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할머니를 따라 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갔습니다. 어릴 적 그곳에 그 집은 여전자장면을 하고 있었고, 사장님 얼굴도 그대로 였습니다. 그릇도 그대로고 양념도 그대로 였습니다. 그런데 맛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내가 변했고, 세상이 변했습니다.   


 학생들과 청주로 체험학습을 갔습니다. 점심 메뉴는 자장면이였습니다. 고급 상들리에가 걸린 고풍스러운 집이였습니다. 학생들과 원탁에 둘러 앉아 자장면을 먹었습니다.

  그때 할머니랑 시장에서 먹었던 자장면이 생각났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손자가 먹던 자장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제는 그때와 비교할 수도 없는 맛있는 자장면을 내가 한그릇 사줄수도 있는데... 그럴 수 없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은 추억은 나에게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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