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북한
평화롭고 따뜻함은 강을 사이에 두고 느껴지는 감정을 둘로 나눌 수는 없었다. 차갑고 굳게 닫힌 북한도 따뜻한 바람속에 삶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소들이 강을 따라 한가롭게 풀을 뜯고 그런 소를 기다리는 부자의 따뜻한 모습, 돌팔매질을 하는 소년, 유람선을 따라 뛰는 소년, 풀을 한가득 안고 옮기는 부지런한 아주머니, 그 너머로 보이는 옥수수밭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압록강 위에 내가 서 있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고 북한땅을 보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같은 나라이면서도 중국을 통해 북한을 봐야 한다는 사실도 슬펐고, 바로 눈앞에 북한을 두고 갈 수 없다는 것도 슬펐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진귀한 풍경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이 북한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배에 싣고 와서 유람선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탄 배에도 검게 그을린 남자 분이 배를 몰고 와서 장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서 물건을 사고 파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배 위에서 분주하게 오가는 북한 사람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맨발을 보았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과 함께 맨발은 그들의 삶이 고난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을 동정하거나 외계인으로 취급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북한 사람이 자신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동물원에 있는 동물처럼 대하지 말고 한 사람으로 봐달라는 의미로 나에게는 들렸다. 나는 북한 사람과 대화를 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술을 두병을 샀다. 좀더 비싼 술을 사달라고 나에게 이야기 했지만 나는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분명 외국어가 아닌 우리 나라 말로 대화가 가능했다. 아직까지는 통일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유람선이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북한 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옛날 군대있을 때 약 8개월 가까이 북한 땅을 보았다. 그때에 느꼈던 감정과는 전혀 달랐다.
돌아오는 길에 술을 사고 돈을 정리하는데, 중국 사람이 내 돈을 가르키며 아이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한자를 써가며 드문드문 대화를 했다. 나는 만원에 있는 사람이 조선의 왕 세종이라는 것과 천원에 있는 사람은 성리학자이며 주리론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다시 나에게 제주도에 가봤고, 한국에 친구가 있다고 했다. 이런 일들을 나는 여행의 진정한 재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