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를 만나러 가는 길-세번째 이야기​​

집안에서 만난 고구려 유적

압록강을 따라 집안으로 향하는 길은 험하고도 멀었다. 좁은 산길을 따라 구비구비 이어져 있는 길은 빠른 속도로 고구려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더욱 조바심나게 하였다. 다롄에서 보았던 끝임없이 펼쳐진 평야 대신 맑은 물들이 산을 따라 곳곳에 흐르고 있었다. 압록강의 지류로 생각되는 수많은 물줄기들이 아마도 고구려를 살찌우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물줄기와 산들에 기대어 집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는 적은 수의 집들이 물을 따라 삶의 터전을 잡고 있었다. 집들의 주변으로 약간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만 있으면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강원도에 있다고 착각을 하여도 좋을만큼 비슷하였다. 그러나 옥수수밭의 규모는 우리나라 모든 옥수수밭을 다 합쳐도 1시간동안 내가 차 안에서 본 옥수수밭이 더 많을 정도로 그렇게 크고 넓었다.

엄청난 규모의 옥수수밭의 일부

집안에서의 첫 답사지는 '국강상광개토대왕평안호태왕비'였다. 가는 길에 태왕릉의 모습이 먼저 보였는데, 고구려 유적이 처음 눈앞에 나타났을 때 순간적으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단재 신채호선생님이 고구려 유적을 처음 만났을때 이런 감동이었을까?

광개토대왕릉비를 지나 태왕릉부터 일정을 시작하였다. 태왕릉은 태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현재는 광개토대왕의 무덤으로 추측하고 있다. 고구려 돌무지무덤의 규모는 사진보다도 더 그게 다가왔다. 태왕릉을 올라가는 계단 양쪽으로 쌓여진 돌들은 그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직접 태왕릉을 올라가보니 크기와 높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태왕릉에서 주변을 바라보니 주변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태왕릉 위치하는 곳이 조그마한 언덕위에 있어서 더욱 주변이 잘보였다. 그리고 맞은 편에 장수왕릉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보며 사이좋게 자기들이 이룩한 고구려의 영광아래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흐뭇해 했을 것같다. 태왕릉은 현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복원을 하기에는 엄두도 나지 않을만큼 규모가 컸지만 중국인들이 이곳을 복원할 의미도 없기 때문에 완전히 무너지기전에는 이 상태로 둘것 같았다. 태왕릉에 다소곳 하게 핀 야생화만이 고구려의 화려한 영광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뒷쪽에서 바라본 광개토대왕릉비


태왕릉을 보고 광개토대왕비를 보았다. 보호각 안에 세워진 비는 좁은 감방에 갇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답답할까? 보호각안으로 들어가 보니 비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대왕의 이야기들은 고구려의 위대함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옛 장군총이라 부른 무덤

다음으로 장수왕릉을 찾았다. 예전에는 장군총이라 불렸는데 현재는 장수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이름이 무엇이든간에 고구려 돌무지무덤 중에는 제일 크고 멋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없는 사실이다. 장수왕릉은 주변 무덤들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큰 돌을 네모반듯하게 깍아서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큰 자연석돌을 군데군데 세워져 있어 동양의 피라미드라 불릴만했다. 사방을 돌아보며 장군총을 둘러보는데 뒷쪽 한 부분이 약간씩 무너지고 있었다. 선생님 한분이 장수왕릉에 비스듬히 세워진 자연석이 없는 부분은 무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하셨다.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힘과 밖에서 안으로 미는 힘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설계를 되었는데 안과 밖의 균형이 무너져 무덤이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와 북한, 우리 나라와 만주가 만나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으면 안될까?


집안에서의 마지막 답사 장소로 오회분오호묘를 찾았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유일하게 직접 볼수 있는 곳이다. 5개의 무덤이 투구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오회분묘 중에서 5호분을 찾았다. 긴 연도를 지나 끝부분에 방이 있었고 방벽과 천장에 벽화들이 가득 그려진 굴식돌방무덤이었고 천정은 모줄임구조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고구려 고분이었다.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고구려 벽화 앞에 감동이 밀려들어왔다. 약간의 서늘함은 바깥의 뜨거운 열기속에 돌아다니는 후손들이 가여워 고구려 사람들이 먼훗날을 예측하고 후손들에게 주는 선물과 같았다. 사신도와 각종 신들이 무덤 벽에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림들은 고구려 사람들이 만들 때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선명했다. 다만 인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벽화에 얼마나 안좋은 영향을 주는지 알기 때문에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습기와 함께 인간의 접근은 결국 십수년 지나지 않아 벽화가 희미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뭔가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들었다. 중국인들에게 고구려 유적은 돈벌이 그 이상은 아닌 것 같았다.


집안에서의 일정은 이렇게 끝났다. 보고 싶었던 환도산성은 다음으로 미룰수 밖에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잠을 자느라 집안시내의 국내성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의 불찰이었다. 우리 역사도 나처럼 순간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어딘가에 묻히거나 다른 나라에 빼앗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광개토대왕릉비에서 아이, 해맑은 웃음에 사진을 몇장찍었지만 끝내 수줍어서 자꾸만 숨었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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