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
어제와 똑같이 일상은 시작되었지만 어제와 달라진 점은 오늘 광양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빗소리에 몇 번을 깨어났지만 아침은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짐을 챙기고 서둘러 휴양림을 나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구름이 산들을 살짝 살짝 비켜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첫 번째 여행지로 도선국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옥룡사였습니다. 산길을 따라 제법 가파른 길을 걸었습니다. 밤새 내린 비로 도로 위로 냇물이 넘쳐 흘러내리고 있었고, 심지어 도로 위에는 이끼가 생겨 도로가 매우 미끄러웠습니다. 동백나무가 야트막한 산을 둘러치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조심스럽게 옥룡사를 향해갔지만 결국 중간에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혹시나 내려오다가 미끄러질까 봐 걱정이 되어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곧잘 잘 넘어지는 사람이라 제가 오히려 덜컥 더 올라갔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따라 다닌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으니까 말입니다.
일행들은 모두 옥룡사를 올라가고 단둘이서 산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밤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한분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혼자서 밤나무를 심어 5남매를 키우셨다는 할머니께서는 허리를 다쳐 허리 보호대를 하면서도 떨어진 밤을 주우러 나오신 것이었습니다. 웃음이 아주 선하고 좋으신 할머니의 손수레를 밀고 내려오면서 짧은 길이었지만 할머니와 말동무를 하면서 내려왔습니다. 할머니는 이곳까지 여행 온 손님과 몇 마디 나눈 여행객에 대한 정으로 손수 주우신 밤을 두손 가득 두 번이나 자루에서 꺼내어 우리에게 건네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잠깐의 인연 속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담아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여유를 부리던 우리는 옥룡사에서 내려온 일행과 함께 마로산성을 갔습니다. 가파르고 진흙탕으로 변해 미끄러워진 길을 걸어 마로산성에 도착하니 제법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마로산성 반대쪽 경사면으로 접어드니 순간 광양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정말이지 한 발짝 차이를 두고 이렇게 달라지는 바람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마로산성은 백제와 신라 그리고 고구려가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마로산성 주변 어딘가에 있었을 가야인 들도 함께 생각해봤습니다.
마로산성을 뒤로 하고 순천왜성을 갔습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왜성을 처음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남해바다가 보이는 곳에 성이 있었습니다. 이순신과 고니시의 고뇌가 만나는 임진왜란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순천왜성을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고 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