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추석 때 걸린 감기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괜찮을 것 같은 감기는 갈수록 심해져 이제 기침이 심해져 잠을 청하기 어려울 지경까지 이르렀다. 동네 약방의 약으로는 이미 해결 불능 상태에 이르렀고 민간요법 또한 속수무책이다. 결국 구비구비 산길을 돌아 시내의 제법 큰 병원을 찾아야 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가는 병원마다 문이 잠겨 있어 한참을 헤매 겨우 병원 하나를 찾았다. 허름한 병원이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입장이라 병원을 갔었고 진찰 결과 꽤 상태는 악화되어 있었다. 아픈 주사를 두대를 맞았는데, 아직도 주사의 아픔보다 엉덩이를 간호사에 보이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예전에 몸이 아파서 병원을 갔었는데 하필 그곳에서 중학교 여자 동기가 간호사로 있었고, 그 간호사로부터 주사를 맞았던 아련한 추억 때문일 것이다.
주사를 맞고 시내 나온 김에 그동안 미루어놓은 것들을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니 아직도 해가 많이 남아있었다. 영화를 보기에는 너무도 맑은 햇살이 나의 역마살을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했고 나는 무작정 영주 부석사로 향했다. 많이 가본 곳이지만 아직도 더 가고 싶은 곳이고 앞으로도 가고 싶은 곳이 아니던가? 한참을 차를 몰고 가니 익숙한 길들 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부석사까지 가로수는 은행나무로 장식을 한다. 아직 노랗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운치를 지니고 있었다. 부석사로 가는 길에는 사과밭이 은행나무 너머 산 능선을 따라 펼쳐져 있고 그 앞에서 갓 딴 사과를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듬성듬성 사과를 팔고 있었다.
아직 해는 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예상보다 일찍 부석사를 도착했다. 역시 부석사 입구의 은행나무 길은 나이 든 나에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길이다. 은행나무와 너머 사과밭의 먹음직하게 잘 익은 빨간 사과는 부석사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나의 죄를 참회하고 올라 안양루에 오르면 백두대간의 산 능선들이 구비구비 파도를 치듯 부석사 앞을 흘러간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무량수전을 보는 단아한 맛과 함께 무량수전이 바라보고 있는 파도 치는 듯 흘러가는 산들을 보는 재미로 늘 부석사를 찾는다. 이번에 또 다른 기대는 오랜만에 법고 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발걸음이 한걸 가벼웠다. 부석사를 휙~~~ 한바퀴 돌고 나서 석양 지는 모습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꽤 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우리도 끼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법고 치는 것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아쉽지만 밤 운전은 너무 고역이라 서둘러 부석사를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할머니 한분에게 사과를 한 박스 사서 내려왔다. 그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닭백숙을 하나 먹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부석사 주차장에서 문득 바라본 하늘에는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2007.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