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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Nov 15. 2015

괴산으로 떠나는 답사 - 첫번째 이야기

까마귀가 찾은 곳에  지은 각연사

 

  괴산읍에서 쌍곡계곡 입구까지 직진하여 태성 차부 수퍼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각연사가 있다.  여느 절과 같이 이 정도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면 분명히 입구부터 굉장히 요란하게 치장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잘 닦여진 넓은 도로와 그 앞을 가득 메우는 각종 가게들 그리고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하여 절은 이미 부수적인 존재로 변하고 선계의 모습은 사라지고 속세의 탐욕만이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각연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긴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각연사로 들어가는 길은 차가 서로 마주한다면 누군가는 한없이 양보해야만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았다.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양보심 하나 없다면 허락하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지 모르겠다. 산으로 둘러싸여 그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숲으로 뒤덮여 있으나 위압감을 줄 정도는 아니었으며 적당하게 햇빛을 받아들인 산은 그 빛을 여기저기 흩어 뿌려 산을 따스하고 밝게 꾸며놓은 듯했다. 계곡을 따라 난 길에는 비가 와서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으며, 산 능성이에 돌들이 흘러내린 곳도 있어 오프로드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만 이곳에도 사람들이 뿌리내리며 살고 있어서 인간의 삶에 자연을 맞추듯이 길 확장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 내가 느꼈던 이런 마음을 후세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차를 타고 10여 분을 달리면 각연사 일주문이 덩그러니 서 있고, 이곳을 지나면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부터는 걸어서 각연사를 가야 했다.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와 시원스레 불어오는 계곡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마음속에 쌓아놓은 걱정들이 사라지는 듯했다.


  계곡을 가로질러 난 다리를 지나면 한뼘의 땅에 한줌의 햇빛이 내려와 있는 곳에 각연사가 있었다. 각연사는 괴산의 보개산, 칠보산, 덕가산에 둘러싸여 있는데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신라 법흥왕 때 유일대사가 까마귀를 따라왔더니 연못에 부처가 있어 절을 세웠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신라 경순왕 때 통일대사가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절 앞 계단을 올라서면 너른 마당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위로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이 있고 마당 한 켠에는 오래된 여러 석재들이 흩어져 있어 각연사의 옛 이야기를 전해준다. 대웅전 앞으로는 어느 절에서나 보이는 그 흔한 탑하나 없어 허전한 듯 하지만 오히려 대웅전을 더 돋보이게 하고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 같다.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것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지붕 옆면이 사람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대웅전을 옆으로 올라서면 비로전이 있다. 비로전은 신라시대 주춧돌을 사용하고 있으나 건물은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며, 앞면 3칸 옆면 3칸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비로전에는 창건설화에서 나오는 연못 안에서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을 모시고 있다. 불상을 보는 순간 뽀얀 얼굴과 길고 얇게 그려 넣은 눈썹, 그리고 빨간 입술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수염을 그려 놓은 것 또한 왠지 웃음이 났다.


  이 불상은 부처가 앉은 자리인 대좌와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가 모두 있는 완전한 형태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친 옷자락은 주름이 간략하게 표현되었고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불상의 광배는 전체적으로 물방울 모양이다. 광배를 살펴보면 머리 위쪽에 3구의 작은 부처와 그 아래 양쪽으로 각각 2구의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안쪽에서부터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졌으며, 가장자리는 타오르는 불꽃을 표현하였다.


  비로전 마당 역시 여백의 공간이며 보리수 나무 한그루가 한 켠을 지키고 있었다. 이것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불사라는 이름으로 다른 절과 같이 고증도 되지 않은 탑을 세운다면 오히려 여백의 멋스러움과 생각의 공간을 방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각연사는 너무나도 예스러운 산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비로전 옆 축대를 쌓은 곳에는 스님 한분이 땀 흘려 농작물을 가꾸고 있었다. 스님의 허리 굽힌 모습이 세상을 향해 부처님을 향해 낮은 자세로 임하는 수양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우리도 세상을 향해 낮은 자세로 낮은 마음으로 대해야 되지 않을까.


  각연사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두 번째 계곡을 만나 큰 바위로 된 징검다리를 건너면 넓은 터가 나온다. 옛날에 밭으로 이용되었을 법한 넓은 들에는 귀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12호)가 하나 있다. 들에는 풀이 어른의 허리만큼 커있어 누군가가 길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찾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설마 이곳에 귀부가 있을까 조심스럽게 다가서니 돌담장 안 기단 위에 거북이가 있었다. 거북이의 비신과 머리는 사라져 버려 주인을 알 수는 없지만 4개의 다리와 꼬리는 또렷하게 남아 있었는데, 튼튼하고 날카로워 당장이라도 기어 다닐 듯했다. 거북이 등무늬는 4각형과 6각형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그 안에 꽃무늬를 장식해 놓아 화려한 느낌을 준다.


  다시 내려와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부도 2기가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통일대사탑비가 있다. 이 비의 주인은 통일대사로 고려 전기에 중국 유학을 다녀온 후 그가 왕실에서 불교의 교리를 강의하자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대사가 세상을 떠나자 광종은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는 이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의 몸체를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구조이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귀부의 발톱은 무뎌져 있었다. 그러나 용의 머리를 하고 있는 거북이의 두 눈만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비의 글자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 마모되어 지금은 일부만 알아볼 수 있다.


  통일대사탑비에서 다시 1km 정도 올라가면 통일대사 부도가 있다. 부도가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82년에 복원하였다. 특이하게 탑이 탑비와 멀리 떨어져 주변 및 사찰을 조망하기에 좋은 산 중턱에 건립되어 있는 것은 산천비보사상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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