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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Nov 18. 2015

괴산으로 떠나는 답사 - 네 번째 이야기

도명산 마애불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듯이 높은 산이 많은 괴산은 이름난 계곡도 많다. 대표적으로 선유구곡, 쌍곡 구곡, 갈은 구곡, 화양구곡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화양구곡은 손꼽히는 명승지로 이름난 곳이다. 또한 화양구곡은 아름다운 자연 때문에 조선시대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이어서 화양구곡 곳곳에 그의 남적을 남겨놓았다. 화양구곡은 가령산 ․ 도명산 ․ 낙영산이 삼각형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이 중 도명산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초기 작품으로 알려진 3구의 마애불이 있다. 도명산 마애불을 찾아가려면 화양구곡 중 하나인 첨성대 쪽에서 올라가 도명산 정상을 지나 학소대 쪽으로 내려오거나, 학소대 쪽에서 올라가 도명산 마애불을 보고 정상을 지나 첨성대 쪽으로 내려오는 방법이 있다.


   아침 해가 채 떠오르기 전 사람들이 북적대지 않는 시간에 찾은 화양동은 여름의 덥고 습한 기운은 사라지고 상쾌함만이 구곡에 남아 있었다. 길게 늘어선 화양구곡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과 숲 그리고 만동묘를 지나 화양 3교에 다다르면 오른쪽에 도명산 안내판이 서 있고 여기서부터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길이 시작된다.  


  비가 와서 그런지 도명산을 오르는 길 곳곳에 작은 계곡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가파른 등산로는 해가 채 떠오르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땀으로 적게 했다.  옛사람들도 힘들게 산을 오르면서 자신들의 삶에서 버려야 할 욕심과 잡념들을 땀과 함께 흘려보내면서 그 끝에 만나는 마애불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등산이 거의 끝날 쯤에도 마애불을 알려주는 안내판은 없었고 수많은 바위를 보아도 불상은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쉬고 계시는 등산객 한분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처음이라고, 불상을 못 봤다’고 했다.

  학소대 쪽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내려가기 시작했고, 내가 지쳐갈 때쯤 그리고 다음에  한 번 더 와서 찾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비운 순간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바위를 누군가가 쪼개 놓은 듯한 그 틈 속 바위 한쪽 면에 하늘 높이 그린 듯, 안 그린 듯한 불상이 희미하게 보였다. 하늘 높이 선 마애불 2구가 나란히 있고 별도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듯한 낮은 곳에 새겨진 1구 이렇게 3구가 나란히 있는데, 가운데 불상을 중심으로 두 구가 호위하듯 서있다. 세 분의 불상이 지키는 곳을 지나야 정상으로 향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은 세분의 부처님으로부터 퀴즈를 푼 사람만이 통과되는 스핑크스의 퀴즈나 이집트의 ‘사자의 서(死者-書)’처럼 사람들의 심장 무게를 저울에 달아 기준 이상의 무게가 되어야만 통과를 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깨진 바위 끝 부분이 처마의 역할을 해주는 듯한 그 아래에  본존불이 있다. 높이는 9.1m 정도이며 깨진 부분까지 합하면 15m가 넘고 얼굴 크기만 2m가 넘는 큰 불상이다. 삼도가 뚜렷하고 양 어깨를 모두 덮은 법의가 물결치듯 커다란 바위에 흘러 내렸다. 한참을 올려보아야 하는 본존불은 흡사 인간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우러러 보아야 하는 절대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본존불 오른쪽에 있는 불상은 본존불과 비슷한 크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새겨져 있다. 콧방울이 크고 입술은 도톰하니 이목구비가 시원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약간의 붉은 빛이 도는 것은 돌의 재질 때문이다.   본존불의 왼쪽에 있는 불상은 2구의 마애불과 달리 깊이 선 새김 되어 제법 또렷하게 보인다. 타원형의 얼굴, 둥근 머리, 이목구비 등이 약간 부조기법으로 만들어져 세련된 면이 보인다.


  불상 앞에 서서 나는 안내판에 있는 어려운 설명보다는 다양한 상상들을 한번 해보았다. 이 높은 곳에 넓은 바위를 찾아 마애불을 새긴 사람은 누구였으며, 이 산 곳곳에 있는 수많은 바위를 두고 하필 이곳에 새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은 백성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백성을 지배하고 싶은 사람이었을까. 또는 백성들이 힘을 모아 자신들을 위해서 만든 것일까. 백성들은 이 높은 곳까지 와서 삶의 희망과 위안을 찾았을까? 불상을 새긴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새겼을까.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단순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마음에 일렁이는 불심으로 일을 하였을까. 누군가 부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같은 눈높이로 보라고 했다. 그렇다면 마애불의 불상들은 어디를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산을 내려오다가 계곡물에 세수를 했다. 그때 위에서 만난 아주머니를 또 만났는데, 그때 아주머니께서 넉살 좋게 '총각 다 벗고 팬티만 입고 목욕해'라고 하셨다. 나는 ‘괜찮습니다’ 그러고는 처음 보는 아주머니와 짧은 대화를 하고 내려왔다. 도명산 마애불이 맺어준 작은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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