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버겁다.
4월부터 업무량이 늘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다보니
더 꼼꼼하게 살펴야 하고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시간은 늘 부족하다.
모든 걸 소화하려면 업무 외 시간을 써야한다.
그렇지 않고는 제시간에 끝낼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주. 팀장님께서 약간 업무 조정을 해주셨다. 내가 기존에 하던 업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부 분배되었다. 주변 선배들도 기꺼이 맡아 도와주셨다.
주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동시에 “내가 일을 잘 못해서 이런 것 같다.“라는
죄송한 기분도 함께 든다.
* * *
이틀 전엔 해외 기업과 웹 미팅이 있었다.
난 영어를 잘 못한다.
그런 내가 focal 역할로 잡은 미팅이었다.
각 팀 부서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많은 사람들이 설명하고 질문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난 그들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맥을 쫒기만도 바빴다.
그나마 우리 팀 부장님이 같이 들어와 주셔서
내가 해야 할 말들을 대신하시며 커버 쳐주셨다.
2시간 가까운 회의 동안 혼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자존감이 내려갔다.
지금 이 자리는, 내가 있을만한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 *
어제 장모님을 오랜만에 뵈었는데
내 얼굴이 누렇게 떴다고 말씀하신다.
간만에 처가댁왔는데.
야근하고 지친 얼굴로 와서 죄송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소리를 많이 듣는다.
요새 나는 누가 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나 보다.
* * *
아침 6:40.
일어났다.
회사가 가기 싫으면서도 빨리 가서 업무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공존했다.
아이와 함께 자고 있는 와이프를 봤다.
와이프도 애보랴 집안일하랴 힘들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씻으러 갔다.
내가 머리 감는 소리에 와이프가 눈을 떴다.
평소와는 다르게 부엌으로 나오더니
방울토마토와 깨찰빵을 내어준다.
그냥 자도 되는데 왜 나왔냐고 하니
내 표정 때문에 그랬단다.
내 표정이 어땠는데? 라고 물어보진 않았다.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다.
* * *
8월이 다 갔다.
올해 100명가량 되는 우리 부서에서 가장 휴가를 적게 쓴 사람은,
나야 나. 바로 나다.
4일 썼다.
그마저도 논건 아니고 개인 일 때문에 썼다.
어차피 올해는 글렀다.
최소한 12월은 돼야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할 거다.
그전까지는 수당 없는 야근을 계속할 생각이다.
물론 정시 퇴근한다고 뭐라 할 사람 하나 없지만,
정시퇴근하면, 내 속도로는 제시간에 끝 낼 수 없으니까.
일이 밀려있다는 압박감과
제 때 끝내지 못할거란 불안감보다
더 오래 일하는 게 (슬프지만) 속 편하다.
* * *
와이프에게 힘들다, 지친다, 육아 휴직 쓰고싶다 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서 “부부라는 게 원래 한쪽이 힘들면 다른 한쪽이 버텨 주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징징징.
그래도 외벌이 남편 수고를 알아주는 것은
자식이 아닌 배우자뿐이다. (자식은 절대 모르지)
그 토닥토닥에 또 힘을 낸다.
내게 주어진 미션이 올해 말 정도에 얼추 마무리가 되면, 우리 가족끼리 여행 한번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