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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 말고 달 Oct 11. 2024

함께 가는 길

학교 밖 청소년 상담기

   예전에는 학교에서 원하지 않게 밀려서 그만두는 청소년들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진로나 진학을 위해 전략적으로 그만두는 청소년들도 많아진 느낌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2017년 꿈드림에서 진로진학상담을 시작했을 때에는 남자 청소년들이 많았고, 학교폭력이나 생활선도 사안 등 청소년 문제행동에 연루된 거칠고 학업과는 거리가 먼 청소년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비해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여자 청소년들의 비중이 많이 높아졌고, 정서심리 문제나 내신 성적과 진학 문제로 자퇴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면 활동 감소 및 디지털 기기 의존 증가에 따른 정서 심리 문제, 고교학점제 도입 등 교육과정 변화, 고교 1학년 내신등급 비중 증가에 따른 부담감 심화, 학력인구감소에 따른 중하위권 대학 진학 가능성 확대 등이 새로운 원인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동안 만났던 청소년들은 주로 고등학교 때에 여러 사유로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지만 초중고 전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대체한 청소년,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미진학 한 청소년 등 매우 다양한 유형의 청소년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일반계 고등학교를 그만둔 학생들이 많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특성화고를 그만둔 청소년, 체육고를 부상으로 그만둔 청소년, 프로 게이머를 꿈꾸며 프로 게임단에 연습생으로 활동하다 성장이 정체되어 그만둔 청소년 등 진로 문제로 학교 밖으로 나온 청소년들도 있었습니다. 청소년 그들의 표현대로 '케바케(case by case)'가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진로가 딱 그렇습니다. 진로가 "일반적으로는 그렇지만 원래 다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까요."

  2020년에 코로나-19 팬데믹 때가 생각납니다. 모든 일상이 올 스톱(all stop)되고, 모든 기관의 대면활동이 셧다운(shutdown)되었습니다. 수능을 포함한 수시 및 정시 전형 일정 전체가 바뀌었고, <꿈드림> 센터도 문을 닫았습니다. 게다가 교사는 학교의 방역과 복무지침 때문에 외부 활동이 어려워 그 어느 해보다 진학상담에 애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마냥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만 없었습니다. 방법을 찾아 건의했습니다. 센터와 협의 끝에 비대면 집단 상담, 과제 제시형 상담, 온라인 개별 상담, SNS 자기소개서 지도, 30분 간격으로 1명씩 내방하게 하여 순차적으로 진행한 개별 대면 상담 등으로 진학상담을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학년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꿈드림에서 본격적으로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에서의 고3 진학지도 경력과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학교에서와는 다른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학교 밖 청소년들은 처지와 조건 그리고 진로 방향이 매우 다양해서 상담에서 애로점이 많았습니다. 내신 성적 때문에 자퇴한 청소년, 학교 부적응으로 대안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경제적 문제로 학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 학교 폭력이나 비행으로 자퇴 또는 퇴학당한 청소년, 장애가 있는 청소년, 가정의 붕괴로 중장기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었습니다. 개성 있고 착실한 청소년도 있었지만, 이기적인 청소년도 있었고 지치고 자포자기 상태의 청소년들도 많았습니다. 여기에다 심리적인 문제와 기타 개인적인 문제가 더해져 상처와 실패감이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 먼저 학교 밖 청소년들의 특성을 파악하였고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그들의 처지와 조건에 맞는 맞춤형 상담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학습능력, 학업성취 정도, 진로 목표와 준비 정도, 자기 관리 능력, 경제적 환경 등을 고려하여 내담자가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학상담과 진로 및 진학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진로진학 컨설팅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둘째, 고졸 검정고시 성적의 내신환산 방법과 반영비율이 대학별로 다르고 전형도 제한적이고 진학 정보도 많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검정고시 성적을 입력하면 지역 주요 대학의 비교 내신 환산 성적이 자동으로 산출되는 간단한 엑셀 프로그램을 만들어 상담에 활용하였으며, 입시기관의 자료와 누리집을 보면서 공부하고 활용했습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진학 관련 연수를 수강하고 각종 진로진학 관련 서적을 구해 읽었으며 주위의 전문가에게 자문도 구했습니다. 그동안 자문, 정보, 자료를 아낌없는 제공 해주고 도와주신 여러 진로상담 부장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상담하면서 많은 성취감과 보람을 느꼈으며, 맞춤형 상담과 자기 주도적인 진로역량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상담활동 과정에서 저에게는 하나의 원칙이 생겼다. 긍정적인 자극과 동기를 부여하고, 공감하고 정보를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만 최종적으로는 항상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결국에는 내담자 스스로가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짐을 느낍니다. 이런 소중한 경험은 큰 교육적 자산으로 선순환되어 돌아와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상담할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으며, 교사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나아지는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단위 학교에서 조금 더 진로전담교사가 진로 상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당장의 입시와 당장의 업무도 좋은 성과를 내야 하지만, 청소년들이긴 인생과 진로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끔 진로역량을 제대로 키워 주는 것이 진로전담교사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 대해 조금 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삶과 꿈, 그리고 희망의 길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거나, 때로는 힘이 들어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어하는 학생들과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이 자기 삶을 이해하고 스스로 꿈을 찾고 행복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진짜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상담은 어렵습니다. 매년 새로운 청소년들을, 다양한 사례를 만나다 보니 늘 새롭고 또 조심스럽습니다. 하면 할수록 경험도 많이 쌓이지만 두려움도 커집니다. 이럴 때에는 그동안 만났던 청소년들 생각으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2017년에 만났던 학교 밖 청소년 L이 생각납니다. L은 체육고를 다니다 부상으로 그만두고 꿈드림에 왔던 학생입니다. 씩씩하고 대인관계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너무나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열심히 활동했기에 저도 추석 연휴 기간에도 꿈드림에 나가서 상담하고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를 도와주었던 생각이 납니다. 경찰 외사과 수사관을 꿈꾸고 있었는데, 본인이 원하던 대학교의 학과에 진학하여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갔던 청소년입니다. 스스로 진로역량을 키워 나가던, 쑥쑥 성장하는 모습이 보였던 청소년이었습니다. 이 청소년을 보면서 제가 오히려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실패를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노력하던 긍정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어느 시간을 어느 공간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잘 해낼 것이고, 지속 가능한 진로와 지속 가능한 행복을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응원합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실패자가 아니라 자기 삶의 과정을 조금 다르게 걸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동정이나 연민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에게도 조금의 도움과, 옆자리를 채워줄 누군가와, 가끔 손잡아줄 누군가는 필요합니다. 교육청에도, 사설 입시기관에도 매우 뛰어난 입시전문가들이 많이 있지만,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들에게는 조금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능력은 부족하지만 진로진학상담 봉사활동을 조금 더 해 보려고 합니다. 여전히 몇 가지 문제로 고민이기는 하지만 최대한 건강하게 10년을 채우는 게 1차 목표입니다. 그다음은 그다음에 고민하기로 하고 현재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고백하자면 원죄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교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교육하고 열정을 다해 진학지도를 하고자 했지만, 돌이켜보면 때로는 의도치 않게 학생들에게 말로, 행동으로, 눈빛으로, 마음으로 상처를 줬던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학교에서 최선을 다하고, 남은 열정으로 그동안 부족했던 곳에 모두 쏟고 싶습니다.

  유튜브에서 리쿠르트 광고를 가끔 봅니다. 아주 잘 만들어진 광고인데요. 마라톤을 소재로 진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광고입니다. 기회 되면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길은 하나가 아니야. 그건 인간의 수만큼 있는 거야. 모든 인생은 훌륭하다." 누군가는 그들의 열정과, 그들의 노력을 기억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점수와 대학 이름으로 성공과 성취를 판단하는 세상이지만 누군가는 진학 결과가 아닌 인생의 과정을 기억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평범한 사람이라 때론 힘들고, 때론 여전히 두렵기도 하지만,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의 노력을 기억하고 응원하는 역할을 잠시 더 맡으려 합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운명공동체의 고3 담임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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