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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해 보기 (4)

작은 기포 이야기

by 경경

새 스마트폰에 화면보호 필름을 붙일 때 누구나가 한 번쯤은 경험하는 일이 있다. 작은 주걱같이 생긴 도구로 열심히 필름을 밀어보아도 얄밉게 살아남는 기포다.


사용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데 이 작은 기포가 정말 눈에 거슬린다. 이를 참지 못하고 방금 땀 흘려 붙인 필름을 다시 다 떼어내고 또 새 필름을 붙인다. 운이 좋아 기포가 남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최악의 사태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사온 필름은 다 써버리고 새 스마트폰 화면에 작은 기포만이 남는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렇게 거슬리던 기포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가 됨을 경험한다. 신경 쓰이고 거슬리던 작은 기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이에 이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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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청소를 몰아서 한다. 나는 그 반대다. 이를 두고 사소한 언쟁이 시작되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간혹 온 집을 태울 들불로 번질 때도 있었다.


우리는 작은 이익을 탐하다 큰 것을 잃을 때가 있다. 가치의 크고 작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장난 삼아 지폐 1장(만 원)과 동전 10개(천 원)를 고르라고 하면 동전 10개를 고르는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지 않나? 아이가 돈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가치를 아는 어른은 당연히 만 원 지폐를 고른다.


모든 상황들이 이와 같다면 아마도 우리는 소탐대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겪는 상황들은 동전 10개와 지폐 1장 중 한쪽을 고르는 상황처럼 단순하지 않다.


일상의 상황 속에는 온갖 이해관계와 가치관과 관점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나의 가치가 그의 가치와 우리의 가치로 단순히 치환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본능에 가깝게 잰다. 무엇을 골라야 하지? 그 셈 속에서 어제까지 나의 가치였던 것들은 속절없이 흔들린다. 우리의 가치와 관점은 현실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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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불편함은 강한 인력이 있어 행동으로 우리를 당긴다. 나보다 더 참을성이 있는 아내는 눈앞의 어지러움에 덜 끌리고 인내가 부족한 나는 매번 그 불편함에 이끌려 움직인다. 불편이 사라지면 그리 요동치던 마음속 불편함도 금세 증발된다. 뭘 그렇게 소란을 피웠는가 싶어서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대범한 아내의 속내도, 초가삼간도 다 타버린 뒤다.


그 잿더미 속에 앉아 있는 내 머릿속 한구석에서 한 문장이 줌 업된다.


‘무엇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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