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함의 해상도는 4K

by 경경 GyongGyong


아내와는 낯설고 뻔하지 않은 사이였다. 다른 나라, 다른 언어, 다른 문화는 사귀기 시작하였을 즈음에 서로를 향한 설렘의 불씨였다.


서로가 무척 색달라했던 아내와 난 이제 더 이상 서로에게 색다르지 않다. 다른 나라, 다른 언어, 다른 문화는 더 이상 특별한 매력이 아니다.


아내가 재미있어하였던 어눌한 내 일본어는 나아졌으며 아내는 더 이상 그 어눌함을 색다르게 느끼지 않는다. 내가 이따금씩 괜찮냐고 물어볼 때마다 야사시이하다(상냥하다)고 말해준 아내에게 이제 그 괜찮냐는 간혹 성가심이 되기도 한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딱 잘라 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아내는 조심스럽게(히카에메니) 말한다. 나는 그 말투가 온화하다고 참 좋아하고 색달라했으나 이제는 이따금씩 답답하게 느낄 때도 있다.


서로 색달라했던 아내와 나는 이제 언제라도 식상해질 수 있는 뻔한 부부가 되었다.

그런데 일상의 잔잔함은 이 뻔함 위에 세워진다. 뻔해야 안심할 수 있다.


아내와 난 서로에게 낯설었던 언어와 문화의 신선함은 사라지고 없다. 그 대신 뻔함의 안정과 평화 속에서만 드러날 수 있는 각자의 바닥을 일상적으로 발견한다.


여~보~


어~, 이것만 잠깐 보고......


여! 보!


이 일상적인 주고받음에 언어와 문화의 차이 같은 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여! 보!라는 한 마디는 나라와 언어와 문화의 묵중한 차이를 아주 가볍게 거두어낸다. 뻔함은 현실이며 강하다.


나는 아내의 한 마디에 또다시 타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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