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사람은 자신에게 기쁜 일, 즐거웠던 일은 마음속에 담아 기억한다. 하지만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 등은 간혹 기억 속에 남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때로 이렇게 말한다.
“정말, 그 추억은 소중해!”
“음, 그건 이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아! 잊고 싶어!”
우리 인생은 연속적이다. 다양한 서사가 겹겹이 쌓인 이야기에 가깝다. 우리의 인생은 만화의 한 컷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추억으로 삼고 싶은 장면만을 인생 속에서 취사선택하여 그것들을 자신의 인생으로서 기억에 남기는 듯하다. 그렇게 기억에 남겨진 것만이 자신의 인생으로서 수용된다. 실제로는 기억에 남겨진 것도, 기억에서 지워진 사건도, 이들 모두가 어우러져 지금의 내 인생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억으로 남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인생의 어떤 일들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의미로서 인식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마땅히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할 우리의 인생이, 색채만 화려한 몇 장의 사진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인간의 시력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은 가시광선의 일부분밖에 볼 수 없다. 자외선이나 적외선 등은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평소 무의미에 가깝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선택하고 그 의미를 찾아낸 삶의 시간은 우리에게 의미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의미를 못 보아 선택받지 못한 인생의 어떤 부분은 우리에게 무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특정 부분의 상실은 제한적이지 않다.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여 선택해 기억에 남겨져 의미로서 존재했던 인생의 어느 부분조차, 자신의 한계—인식의 한계, 존재로서의 유한성—에 의해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탄식할 때가 있다.
“삶의 모든 것이 허무하다!”
문득 어느 순간,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 전부가 더 이상 의미로서 인식되고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렇게 내뱉는다. 이윽고 의미로서 기억에 남아 있던 인생의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 나아가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 무의미해진 인생의 사건들처럼 부정당하는 일도 우리에겐 종종 일어난다.
불현듯 들이닥친 이 허무감—의미를 찾을 수 없음—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삶의 질주 속에 채 의미로서 발견되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해 그곳에 남겨진 우리의 이야기는 없을까? 일상의 삶을 반추하며 눈여겨보고 귀 기울이고 새겨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