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별 말도 아닌데 그 말로 우리는 종종 사이가 꽁꽁 얼어붙기도 하고 봄 같이 풀어지기도 한다.
‘아니, 그건…’
‘아, 그렇네. 어, 그렇구나.’
별 말 아닌 것으로 반갑지 않은 감정이 일 때면 우리 마음속에는 왠지 모를 낯섦이 피어오른다. 이 차가운 느낌의 감정은 사람들과 이어져 있던 모든 관계의 끈들을 모두 얼려버린다. 이 냉담함은 스스로를 향해서도 힘을 발휘한다. 이 차가움은 마음 안에서 자리 잡은 그 공간만큼 스스로를 향해서도 소원해지게 만든다. 순식간에 주위를 모두 진공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이 감정이 자연 소멸되기까지 우리는 사람들과 상황,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단절감을 참아야 한다. 반갑지 않은 경험인데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쉽사리 스스로를 이 상황으로 내몰며 단절감의 아픔을 막연히 견딘다.
아내가 한국어 공부도 할 겸 시험도 한번 쳐볼 심산으로 책을 하나 사 왔다. 며칠 책을 뒤적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곤 애써 나에게 물었다.
“여보, 이 책 나에겐 좀 어려운 것 같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좀 알려줘요.”
“책 산 지 얼마나 됐다고. 한, 한 달 머리 싸매고 읽다 보면 그 사이 알게 돼. 그리고 그게 공부지. 그렇게 하다 보면 다 자기 게 돼~.”
아내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입을 닫고선 펼쳐 보고 있던 한국어 책을 덮었다. 왠지 모를 냉기가 느껴졌다. 함께 내 마음속에도 아내와 잠시 주고받은 짧은 대화만큼의 낯섦이 일었다. 그리고 그대로 내 안에서 그 낯섦은 굳었다.
순간적으로 생겨나 굳어버리는 이 낯섦의 느낌은 어쩜 무시할 정도의 것인지도 모른다. 방치하면 그대로 의식 속에서 사라짐을 우리는 자주 일상에서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라졌다고 느끼고 있던 이 낯섦이 비슷한 상황과 조건에서 다시금 일어나 마음을 딱딱하게 굳혀버림을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아내와의 대화는 일상적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반복된 횟수만큼 내 안의 어딘가는 어쩌면 돌같이 굳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하고의 대화 속에서 생긴 이 불편함은 짖꿎게도 이제껏 잘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하고는 이 낯섦의 불편함을 참아내기가 영 쉽지 않음을 요사이 경험한다. 내리사랑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나 버티기 어렵다.
“요샌 회사에서도 퇴근 후에 부하 직원에게 연락 못해. 이 시간에 무슨 연락이 온다고 스마트폰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니!”
“아빠, 지금 반 친구들하고 행사 준비 때문에 연락 주고받았거든. 먼저 물어보세요.”
“...”
싸늘한 냉기가 순식간에 큰아이와 내 사이를 훑고 지나간다. 동시에 내 마음속에서는 그 낯섦이 일었다. 그리고 마음속 공간 어딘가가 딱딱히 굳어버렸다. 이 낯섦의 감각은 시간이 지나면 의식 속에서 멀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 뒤에 아이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시간이 반드시 기다리고 있음을 경험적으로 난 알고 있었다. 이 불편함이 칼로 물 베기인 아내와의 대화 때와는 달리 왠지 참기 어렵다.
그러나 내 안에서 굳어진 나는 스스로의 온 정신과 몸을 딱딱하게 한다. 아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이야 무시할 정도로 굳어진 마음은 견고하다. 죽을 정도로 싫고 어려운 화해의 그 한마디를 먼저는 이 녀석에게 건네야 한다. 그제야 스스로를 낯설게 하였던 이 딱딱해진 내 속의 그 부분이 봄 눈 녹듯 풀어진다. 그 후에야 간신히 화해의 한마디를 내밀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낯섦이 빛의 속도로 마음 어딘가를 모두 굳히기 전에 허둥지둥 화해의 말을 힘겹게 아이에게 조심조심 건넨다.
“아..., 그랬어. 아빠가 미안해.”
“... 예~.”
사전을 뒤질 필요도 없고 깊은 의미 따위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는 그 쉬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입 밖으로 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워지는 건지. 깊은 원인까지야 다 모를 일이지만 이 한마디의 말이 어찌 되었든 차가워진 상황을 따뜻이 데우며 굳어져가는 마음 어딘가의 한구석을 온기로 풀어준다.
낯섦과 그로 인해 굳어진 마음이 그 쉬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끄집어내어 상대에게 건네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추측이 든다. 반면에 이 낯섦으로 인한 마음의 굳은살을 걷어내는 것은 온기를 품은 일상의 익히 아는 말들이다.
‘그렇네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머리를 감싸며 온 신경을 집중해 한국어 시험 책을 노려보고 있는 아내에게 화해의 말을 건네야 하는데 어쩐지 그 말들이 낯설다. 그러나 아내에게 건넬 화해의 말을 찾기 시작한 내 안에서는 낯섦으로 인해 굳어진 마음 한 구석이 풀어지기 시작함을 느낀다.
아내와 아이에게 건네고자 한 화해의 말은 딱딱히 굳어버린 나 자신과 내 안의 것들에게 먼저 내민 화해의 온기였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