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아이의 첫 인생태클
대부분 어릴 적 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그중에서 뚜렷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바로 내가 유치원 때 다닌 '어린이회관 유치원'
부모님은 어떻게 이런 곳을 보내려고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빠가 사업을 20대부터 해서 그런지 여기저기 들은 게 많았었을지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가 못해봤으니 형과 나에게는 좋은 것처럼 소문이 들리면 해주고 싶었을 거라 짐작한다.
이런 모습을 한 유치원이라고 보면 된다.
어쩌면 전 세계를 통틀어서 이만한 유치원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넓은 자연환경. 그로 인해 사계절 뚜렷한 아름다운 경관, 최신식은 아니지만 무지개 극장, 수영장, 잔디구장, 실내체육관, 근화원 등
유치원보다는 캠퍼스라는 표현이 맞을 부대시설들..
유치원 다니면서 '우뢰매'를 어린이회관 내 극장에서 봤던 기억도 난다.
우리 가족이 성수아파트에 살았는데 외국스러운 스쿨버스가 성수아파트로 픽업을 와서 우리를 태우고 어린이회관으로 유치원을 다녔다. 1990년대에 스쿨버스로 다니는 유치원이라니.. 허허
7살, 유치원에서는 대장 나이가 아닌가.
그때의 나는 무서울 게 없는 아이였었다.
유치원에서 누구보다 잘 뛰어놀았고,
낮에는 아파트단지 내 엄청나게 많은 잠자리를 잡으며 하루에 30마리도 넘게 잡고,
(이 때는 잠자리 많이 잡으면 대단하다고 여기고 잡은 잠자리는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땅 속의 개미굴을 누구보다 빠르게 찾아 여러 가지 실험(?)을 했었고
지금까지 연락하는 베프도 처음 생겼을 때였다.
마치 옆을 보지 못하는 경주마처럼,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는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이라고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앞만 보고 살던 나에게 첫 교통사고가 났다.
스쿨버스가 아파트 사이에 나를 내려주고 나는 반대편으로 좌우를 살피지 않고 질주했다.
신호등이 없는 왕복 2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튀어나가는 나를 반대 차선에서 오는 오토바이는 예측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너무 죄송하다. 쪼끄만한 애가 피하지도 못하게 튀어나왔으니..)
!!!!!!!!!!!!!
내 옆구리와 오토바이가 속도를 늦추지 못한 채 강하게 충돌했다.
나는 오토바이 바퀴아래로 멍석말이하듯이 데굴데굴 굴렀고, 오토바이는 내 몸위를 밟으며 지나가고 그 후에 옆으로 쓰러졌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의 내 느낌을..
데굴데굴 구른 나는 앉은 자세로 몸을 일으켜 세운 뒤에 5초간 멍~하게 앉아 있었다.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때의 느낌이.
아픈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지만, 사고 후 내 주변 사람들이 유난 떨며 호들갑 치는 모습들을 한참을 보다가 그 분위기에 눌려 그때부터 한참을 울었다.
한 20분 울었을까? 저~기서 엄마가 울면서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내 울음은 절정에 달했고
엄마는 나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흐으흐으윽, 흐으흐으윽"
엄마가 뛰는 호흡과 울음소리가 합쳐지며 불규칙하게 내 귀에 들어왔고
그 호흡이..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은 호흡이.. 진실된 울음소리를 일찍 깨우친 걸 수도 있겠다.
병원에 도착해서 알았지만,
나는 사고가 났을 때부터 코피가 줄줄 계속 나고 있었고,
무릎은 살이 다 벗겨져서 살짝 뼈가 보이는 상태였다.
수십바늘을 꿰매고 한동안 병원신세를 지게 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7살의 내가 인생에서 첫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단지 앞만 보고 달렸던 나를 돌아보게 한 사건이 되었다.
그때부터 횡단보도 건널 때마다 어찌나 쫄보가 되었던지..
사고는 선택은 아니지만,
어떠한 행동을 할 때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좌우를 잘 살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