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국과 고등어-생강 구이

부엌은 그런 곳이다.

by 이선용

"엄마! 내가 오늘 요리를 개발했어! 밥을 구운 김에 싸서 장조림 간장에 찍어먹으면 맛있잖아? 김밥을 작게 만드는 거야, 장조림만 넣고. 조그만 장조림 김밥! 엄청 맛있겠지?"


엄마는 '오늘은 뭐 해 먹지?'라는 고민을 달고 사는 요리에 자신이 없는 주부셨고, 난 그런 엄마에게 새로운 요리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어린이였다. 엄마는 간을 맞출 때면 언제나 나에게 맛을 보게 했다. 불고기 양념이 잘 되었는지 먹어보라며 조금씩 떼어주시던 양념된 생 쇠고기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한참 공부 열심히 하던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엄마 옆에서 마늘을 까고, 파를 다듬고, 국에 들어갈 고기를 썰고, 양념을 했다. '그만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라'는 엄마. 요리를 해야 머리가 식는다고, 이게 쉬는 거라고 말하는 나에게 '내가 낳았지만, 넌 참 날 안 닮았다'라고 하셨다.




언니가 다니고 있던 대학에 나도 입학을 하며 대학교 앞에 자취집을 구했다. 언니는 언제나 창의적이었다. 한 번은 김치볶음밥으로 전을 부쳐보자고 했다. 아이디어는 좋았다. 돌솥김치볶음밥을 시켜 먹으면, 마지막에 돌솥 바닥을 긁어가며 먹게 되는 쫀득하게 맛난 그 누룽지를 만들어 보고 싶었을 뿐이다. 팬에 불을 올리고 식용유를 두르고, 살짝 질게 만든 김치볶음밥을 팬에 잘 눌러 폈다. 밥이 너무 두꺼웠을까? 밥의 되기가 적당하지 않았던 걸까? 납작하게 팬에 깔린 밥은 뒤집을 수가 없었다. 좀 더 익히면 굳으면서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계속 익히던 그 밥은... 결국, 불조절을 잘못해 홀라당 타버렸다.


우리의 한 끼 식량은 그대로 쓰레기통 행이 되었고, 옷에 탄내가 스며들까 걱정돼 창문을 다 열고 환기를 하니 집은 냉골이 되었지만. 언니와 난 깔깔 거리며 웃었다. 김치밥전은 다시는 시도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실험적인 요리들이 종종 언니와 나의 자취집 부엌에 등장했다.


그냥 그랬다. 어릴 적부터, 나에게 부엌은 새로운 생각으로 가득찬 재밌는 곳이고, 긍정적인 회복의 공간이었다.




2007~2008년 뉴욕 월스트리트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서브프라임 subprime 사태라고 불리는 미국의 금융대란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뒤흔들렸다. 어쩌다 보니 난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 앉아있었다. 메릴린치(Merrill Lynch)에서 서브프라임에 기반을 둔 부채담보부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을 발행하고 거래할 때 그 위험도를 분석하는 리스크 관리팀이 내가 속한 팀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문서를 파쇄기에 넣어 파기하고, 우리 팀을 변호해 줄 중요한 이메일을 백업해 놓고, 녹음 기능을 끄고 컨퍼런스 콜을 이어가더니, 결국엔 내 옆에서 일하던 동료 몇몇이 개인 소지품이 들어간 박스를 가슴에 않고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팽팽한 긴장감과 약간의 패배주의, 냉소와 우울함. 많은 감정이 혼재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휘둘리다가 집에 돌아오면...


나에겐 부엌이 있었다.


압력솥에 쌀을 씻어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르고, 다시팩을 넣어 끓인 국물에 풀어놓은 달걀을 조심스럽게 붓는다. 쪽파를 쫑쫑 썰어 넣고 뚜껑을 덮는다. 냉장고에서 김치와 김을 꺼내 반찬 그릇에 덜어놓는다. 냉동실에 얼려있던 고등어를 꺼내 전자레인지 해동기능으로 빨리 녹인다. 아직 살짝 얼어 있는 고등어에 칼집을 내고 사이사이 잘게 썬 생강을 끼워 넣고 오븐에 굽는다.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밥향기를 내뿜는 압력밥솥에선 취취~ 소리가 나며 밥이 지어지고 있다. 오븐에선 고소한 고등어의 향기와 향긋한 생강의 향기가 폴폴 새어 나온다. 그렇게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머리는 비워지고, 이리저리 날뛰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비워진 머릿속엔 이번 주말에 하고 싶은 요리가 벌써부터 떠오른다. 식탁에 앉아 주말에 만들고 싶은 요리를 끄적이며 필요한 재료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 나.


그렇게 또, 나는 회복되고 있었다. 나의 부엌에서.




달걀국과 고등어-생강구이


1인분 / 15분


재료


달걀국

달걀 한 개

다시팩 한 개

물 2 컵

쪽파 조금

(옵션) 버섯


고등어-생강 구이

고등어 한 조각

생강 조금

식용유 조금




조리법


달걀국

물에 다시팩을 넣고 살짝 끓여주세요, 불을 약하게 줄여서 물이 너무 바글바글 끓지 않도록 해주세요. 버섯을 넣는다면, 지금 얇게 썬 버섯을 넣고 익을 때까지 끓여주세요. 이제 잘 풀어놓은 달걀을 한 번에 붓지 말고 졸졸 따른다는 느낌으로 다시물에 부어줍니다. 달걀이 풀어져 버리지 않고 부드럽게 덩어리가 지도록 계속 약한 불에서 달걀이 익을 때까지 불을 낫게 유지하다 불을 끄세요. 달걀이 다 익었다 싶을 때 쫑쫑 썰은 쪽파를 넣고 냄비 뚜껑을 그대로 덮어 놓으세요.


고등어-생강 구이

냉동 고등어 필레를 녹여주세요. 필레는 얇기 때문에 실온에 놓아두거나 흐르는 물에 잠시 담가놓으면 금세 녹습니다. 완전히 녹일 필요는 없어요. 고등어가 녹으면 사선으로 칼집을 냅니다. 칼집 낸 곳에 채 썰어 놓은 생강을 넣어주세요. 고등어 윗부분에 살짝 식용유를 바르고 에어 프라이어에 넣습니다. 185도에서 10분 정도, 고등어가 노릇노릇하게 익을 때까지 익혀주세요.




잡곡밥, 달걀국, 고등어-생강 구이, 구운 곱창김, 어리굴젓, 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