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퇴화했을까?

트라우마가 만든 뇌의 변화와, 다시 회복하는 길

by 민진성 mola mola

기억이 흐릿해지고, 생각이 느려졌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혹시 내 뇌가 망가진 건 아닐까?” 외상이 일상처럼 반복되던 시절, 나는 살아남기 위해 감각을 차단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기억이 연결되지 않았고, 말이 끊기고, 집중이 안 되고,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건 게으름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기능’이 정지된 것이다.



CPTSD는 뇌를 어떻게 바꾸는가?

“당신은 너무 예민한 게 아니라, 뇌가 생존하려 한 거예요.” CPTSD(복합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단순한 감정문제가 아니다. 뇌 구조 자체에 영향을 주는 만성적 생존 반응이다.

1. 편도체 : 과활성, 과잉경계, 작은 자극에도 공황

2. 해마 : 위축, 기억 왜곡, 시간 혼란

3. 전전두피질(PFC) : 저활성, 집중력 저하, 판단력 약화

4. 전축대상회(ACC) : 조절실패, 감정조절실패, 자기비난 악화

이는 뇌가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적화된 비상 모드이다. 문제는, 그 상태가 너무 오래 유지될 때다.



2년 간 기능 정지된 나, 퇴화한 걸까?

나는 외상으로 인한 트리거가 촉발된 이후 7년 동안 끊임없는 긴장과 과각성 속에서 살았다. 그중 2년은, 거의 일상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로 지냈다. 이렇게 오래 지속된 뇌 기능 저하는 정말 회복 가능할까?



뇌는 망가지지 않는다, 다시 배운다

다행히도, 뇌는 ‘기계’가 아니다. 망가지면 버려야 하는 회로가 아니라, 다시 배울 수 있는 살아있는 조직이다. 이를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뇌는 새로운 자극과 환경, 경험을 통해 새로운 회로를 형성하고, 기능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회복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재설계다.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뇌의 회복에는 몇 가지 핵심 원리가 있다.

1. 안전한 관계: 전측대상회의 재활성

감정조절 회로를 복원시키는 핵심은 '안전감'이다.

2. 규칙적인 걷기: 해마와 PFC 자극

걷기는 가장 단순하지만 뇌 전체에 신경재생 신호를 주는 활동이다.

3. 창작과 표현: DMN(기본모드네트워크) 재조정

글쓰기, 그림, 음악 등은 감정기억의 해석과 재정의를 도우며 자기서사의 주도권을 회복시킨다.



CPTSD 회복은 뇌의 새로운 서사를 쓰는 일이다

우리는 기억을 없앨 수 없다. 하지만 기억의 서술자를 바꿀 수 있다. CPTSD의 회복은 바로 그것이다. 나를 괴롭혔던 회로 위에, 새로운 회로를 덧대는 일.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며 그 회로를 만드는 중이다.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난 예전 같지 않아”, “기억이 안 나”, “머리가 멍해”, “뭔가 고장난 것 같아”라고 느끼고 있는가? 그건 ‘망가진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흔적’이다. 뇌는 절망 위에 새로운 회로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새로운 회로의 첫 연결이다.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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