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

나의 몸은 나의 정신보다 약하다

by 민진성 mola mola

존재만으로

어떤 사람은, 존재만으로 나에게 고통이다. 두려움이다. 사실 두려워하는 행위가 나에게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이미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이미 많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고통은 남아 있다. 어떤 사람은, 말 한 마디 없이도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 폭력적인 행위 없이도 그 존재만으로 폭력이다. 우리는 경험을 사고로만 저장하지 않는다. 감각으로, 감정으로, 반사 반응으로도 저장한다. 특히 외상적 경험(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수준의 충격 상황)은 비언어적 기억계(implicit memory)에 깊이 남는다. 오히려 Joseph LeDoux에 따르면 편도체는 논리보다 빠르게 공포 반응을 일으킨다. 지금 그 사람이 나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알아도 편도체는 감각적으로 논리보다 빨리 공포를 느낀다. 어찌 보면 위협 상황에서 빠르게 탈출해 생존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가 아닐까.


예측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예측을 더 잘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뇌는 지금 안전하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과거의 예측이 실패하여 안전하다고 판단한 상황이 위험 상황이었다면 특정 대상에 대한 예측 자체를 포기할 수 있다. 안전 상황을 예측하기보다 만성적으로 경계 상태에 있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 사람의 행동이 늘 위협적이고 만성적으로 폭력적이었다면 아예 그 사람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트라우마의 핵심이다. 공포가 대상에 조건화되는 것. 그 사람의 폭력인 행동이나 언행이 그 사람 자체와 동의어가 된 것이다.



왜 그런 존재인가

복합외상은 반복적, 지속적, 관계 기반의 외상에 의해 발생한다. 한 개인이 오랜 기간 동안 트라우마의 근원이자 매개체가 되었을 경우, 그 존재 자체가 뇌에 트라우마 자극으로 각인된다. *Judith Herman, 『Trauma and Recovery』*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반복될 때 인간의 내면화된 구조를 바꾸며 안전하다는 기본 감각 자체가 흔들린다. *Bessel van der Kolk, 『The Body Keeps the Score』*에 따르면 관계 기반의 트라우마는 뇌와 신경계를 항상 경계 상태로 고정시키며, 트리거가 사람 자체가 될 수 있다. 즉, 트라우마 대상과 트리거가 구분되지 않고, 그 사람과 마주치거나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의 트리거가 될 수 있고 그 자체로 재외상화의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신경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트라우마 기억은 맥락화되지 않은 채 기억된다. 외상 기억은 시간적, 논리적 맥락 없이 감각 기반으로 저장된다. 특정 인물의 존재, 말투, 움직임, 심지어 냄새나 침묵조차 자동신경계(ANS)를 자극할 수 있다. 애초에 이런 반응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Vagal tone & Polyvagal Theory (Stephen Porges)*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 맥락에서 위협이 감지되면, 말 그대로 존재 자체만으로도 부교감신경이 마비되거나 과흥분된다.



혼란한 존재들

애착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떤 경우에는 부모가 그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심리적 안전기지가 아니라 공포기지로 작용할 때 그렇다. 어린 시절 주 양육자가 일관되지 않거나 위협적일 경우, 애착 대상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 생사여탈권을 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주 양육자의 비일관되거나 위협을 동반한 양육은 외상의 대상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양가감정을 느끼며 자아감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내가 의지해야 할 사람에게 도망쳐야 한다는 모순된 신호를 내면화하는데, 이를 혼란형 애착(Disorganized Attachment)이라고 한다. 트라우마 대상이자 트리거인 대상을 회피한다거나, 가족이기 때문에 그들을 회복의 대상으로 여길 수 없어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처한다. 이는 외상 혹은 복합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 PTSD 혹은 CPTSD 환자들의 회복을 막는 트라우마의 심장부가 된다.



존재만으로도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과도한 스트레스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스트레스와 공포 상황에서는 배가 아프고 설사하거나 체한 느낌이 드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공포와 스트레스는 투쟁-도피(Fight or Flight;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반응을 유도하며, 이때 부교감신경이 억제되고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다. 교감신경계는 생존에 필요한 활동(예를 들어 소화)을 멈추게 한다. 위, 장 등 장기 내 혈류량이 급감하면서 소화 기능이 저하되고 복통, 설사, 체한 느낌을 유발한다. 장 운동이 불규칙해져 급격한 연동운동(설사) 또는 지연된 운동(변비)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장에는 뇌 다음으로 많은 신경세포(Enteric Nervous System)가 존재한다. 장은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아드레날린)의 영향에 매우 민감하다. 뇌의 감정 반응이 장으로 전달되면, 장내 운동성과 분비 기능을 조절한다. 이 장-뇌 축(Gut-Brain Axis)은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스트레스가 장의 이상 반응을 일으키고, 장의 불안정성이 더 큰 정서 불안을 야기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진화론적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체내 내용물의 빠른 배출이 유리하다고 본다. 외상 상황이나 트리거를 마주한 상황은 실제 위협이 존재하는 것과 무관하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 같은 공포를 마주한다. 몸을 가볍게 해서 도망을 더 잘 가도록 하기 위해 설사를 하거나, 독성 물질이나 병원균이 있다고 감지하면 복통이나 구토감이 드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공포 상황에 나타난다. 극도의 긴장 시 긴장성 설사로 이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이것은 비단 CPTSD 환자만의 일은 아니다.


물론, CPTSD 환자의 경우 지속적으로 교감신경이 부교감신경에 비해 우세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는 장기적인 복통, 소화 장애, 과민성대장증후군(IBS)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정신신체의학 연구에 따르면 IBS 환자 중 상당수가 과거 트라우마 경험을 보고하고 있다. CPTSD 환자의 장 기능 이상률은 매우 높고, 감정 플래시백(감정이 드는 이유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데 감정이 드는 것, 특정 대상이나 사물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만 정작 그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만성적인 트라우마에 노출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이나 해리 상태에서 복통과 설사가 심화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를 놓고 보자면, 극심한 해리 상태에 있을 때 설사와 구토가 동반되기도 했다.



나의 몸은 나의 정신보다 약하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두고 정신력으로 이겨내라는 말을 하는 경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거나 접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중등도 이상의 증상일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충분히 정신적으로 강하다. 하지만 내 몸이 나의 정신보다 약하다. 나의 정신이 스트레스를 견디는 동안, 몸은 견디지 못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에 빠져버린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말도 없이. 어쩌면 존재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 나는 지금도 그 사람과의 접점이 생기면 정신으로는 견뎌도 몸이 견디지 못해 생리적으로 거부를 한다. 화장실을 계속 들락거리고 무엇을 먹든 금세 체해버린다. 그건 음식 때문이 아니다. 감정이, 내 안에서 소화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생각번호20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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