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으로 포장된 폭력의 심리
어린 시절, 우리 집 거실에는 작은 다트판이 있었다. 2단부터 19단까지 숫자가 적혀 있었고, 아버지는 그 판에 다트를 던졌다. 거기에 맞은 숫자는 내가 풀어야 할 방정식이었다. 19×19 같은 문제가 나오면 5초 안에 암산해야 했다. 틀리면 그 결과값만큼 맞았다. 361대를 맞는 날도 있었다. 주로 플라스틱 야구 방망이로, 울면 “남자가 울면 안 된다”며 더 맞았다.
돌아보면 이것은 단순한 훈육이 아니었다. 다트, 방정식, 시간 제한, 매질 횟수…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의식(ritual)처럼 짜여 있었다. 이런 의식은 아이에게 “규칙이 있다”는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장치다. 규칙의 설정자도, 판정자도, 집행자도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틀린 문제의 값만큼 맞는다는 규칙은 폭력을 수학적·이성적으로 보이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고통을 기계적으로 늘리는 기능을 했다. 19×19를 틀렸다고 361대를 맞는 것은 학습 효과와 전혀 관계없고, 단지 체벌의 양을 정당화하고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폭력이 계산되면 오히려 더 잔혹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어린 나도 어렴풋이 느꼈다.
다트를 던지는 순간, 나는 몸 전체가 긴장으로 굳어버렸다. 문제를 맞히더라도 안심할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은 공포-기대 반응(fear conditioning)을 강화한다. 다트, 숫자, 시간제한과 같은 중립적 자극이 점점 공포와 연결되고, 나중에는 다트를 보지 않아도 비슷한 긴장감이 떠오른다. 이것이 외상 기억이 뇌에 각인되는 방식이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울 때 더 맞는 경험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처벌로 학습시킨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는 감정을 숨기고, 심지어 스스로도 느끼지 않으려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감정 회로의 반응성이 낮아져 성인이 되어서도 기쁨·분노·슬픔이 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기괴한 방식은 사실 아버지의 자기 통제감 회복을 위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무작정 화를 내는 대신 규칙을 만들고 숫자를 부여하면 “나는 교육적 훈육을 하고 있다”는 자기 정당화가 가능해진다. 폭력의 책임이 개인 감정이 아니라 “네가 틀렸기 때문”이라는 외부 규칙으로 전가되면서 부모는 죄책감을 덜 느낄 수 있다.
이런 처벌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을 넘어
숫자와 시간 압박에 대한 과잉 긴장
틀림 = 벌이라는 사고 회로
감정 표현에 대한 두려움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은 성인이 되어서도 완벽주의, 자기비난, 감정 둔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트판과 방정식은 그럴듯한 규칙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폭력의 합리화를 위한 장치였다. 그 순간 아이였던 나는 교육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 기괴함을 정확히 이름 붙이고, 그 경험을 나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적 폭력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과거와 나 자신을 분리할 수 있다.
#생각번호202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