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은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라는 말이 아니다
트라우마 회복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세상은 안전하다”는 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현실과 너무 다르게 느껴졌다. 세상은 여전히 폭력적이고, 불공정하고, 위험한 관계와 사건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경험한 고통은 그저 예외적 불운이 아니라 이 세상이 품고 있는 실제 위험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그런데 누군가 “이제 안전하다고 믿으라”고 하면 그건 나더러 현실을 외면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회복은 세상을 장밋빛으로 보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 되는 과정이다. “세상은 위험할 때도 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게 진짜 회복이다. 안전 경험을 훈련하라는 말은 세상을 완전히 안전하다고 믿으라는 게 아니라 위협이 아닌 순간에는 몸이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재학습하는 과정이다. 그래야 에너지를 아껴서 정말 위험한 순간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세상은 여전히 위험하다.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순간을 위협으로 느끼면 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회복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현실 인식 : 위험, 폭력, 불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
안전 경험 : 지금 이 순간은 위협이 아니라는 감각을 몸에 학습
이 균형이 잡혀야 세상과 싸워야 할 때 싸우고, 쉴 때는 쉴 수 있다.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무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위험한 관계에서 벗어나고, 나만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회복은 세상을 바꾸는 힘과도 연결된다.
나는 세상을 안전하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위험하다. 하지만 나는 그 위험 속에서도 나를 지키고, 나를 회복시키고, 나만의 안전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회복이다 — 거짓 평온이 아니라, 현실 위에서 숨 쉬는 평온이다.
#생각번호202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