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명은 ‘삐—’ 소리일까

뇌가 만들어내는 조용한 소음

by 민진성 mola mola

소리가 아닌 ‘착각된 소리’

이명(耳鳴)은 귀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뇌가 마치 소리를 듣는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이다. “삐—” 혹은 “쉬—” 같은 소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소리는 외부 세계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청각신경계가 스스로 만들어낸 신호다.



고주파 세포의 침묵, 그리고 뇌의 보정

귀 속 달팽이관에는 주파수마다 다른 소리를 감지하는 세포들이 있다. 이 중에서도 고주파를 담당하는 세포는 노화나 소음, 스트레스에 가장 약하다. 이 세포들이 손상되면, 해당 영역에서 신호가 사라진다. 하지만 뇌는 ‘아무 입력이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그 결과 뇌는 스스로 신호를 만들어내며 빈 공간을 채우려 한다. 이때 들리는 인공적인 신호가 바로 “삐—” 소리다. 결국 이명은 손상된 주파수 대역을 뇌가 복원하려는 시도이자, 생존을 위한 자기보정이다.



샤워기 아래에서는 조용한 이유

이상하게도 샤워를 할 때는 이명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마스킹 효과(masking effect)’ 때문이다. 샤워기의 물줄기나 환기팬, 빗소리 등은 약 3~8kHz의 넓은 대역의 소리를 낸다. 이 소리가 이명의 주파수와 겹치면서, 뇌가 이명 신호를 상대적으로 덜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조용한 밤에는 더욱 크게 느껴지고, 물소리나 백색소음 속에서는 거의 사라진다.



“삐—”만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이명이 같은 형태로 들리는 것은 아니다.

삐— : 감각신경성 이명 (청신경 손상)

웅— : 저주파 이명 (중이압, 혈류성)

딱딱, 덜컥 : 근육 경련성 이명

그중에서도 ‘삐—’는 가장 전형적이고 흔한 형태로, 신경의 과흥분 상태를 반영한다.



조용한 세계 속의 신호

이명은 불편하지만, 뇌가 여전히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치료의 핵심은 ‘소리를 없애는 것’보다, 뇌가 이 신호에 과도하게 집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백색소음, 명상, 일정한 수면 리듬, 스트레스 조절은 모두 그 방법 중 하나다.



뇌가 보내는 작은 SOS

“삐—” 하는 소리는 단순한 잡음이 아니다. 그건 우리 뇌가 조용함 속에서도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신호다. 그 소리를 완전히 없애려 하기보다, 그 소리를 만드는 ‘나의 뇌’를 이해하는 일, 그것이 이명과 공존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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