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인정하는 인간

순수의 종말과 윤리의 시작

by 민진성 mola mola

인간은 폭력을 부정하면서 살아왔다

문명은 언제나 ‘선한 인간’을 꿈꿔왔다. 살생 없는 식탁, 오염 없는 에너지, 착한 소비, 깨끗한 관계. 그러나 그 모든 꿈은 현실의 폭력을 시야에서 지우는 기술로만 작동해왔다. 우리는 폭력을 줄이지 않았다. 다만 폭력을 부끄럽게 여기는 방식을 발명했다. 그 결과, 인간은 잔혹함을 멈추는 대신 그 잔혹함을 의식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거짓말

비건, 채식,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 이 모든 것은 결국 ‘깨끗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의 변주다. 그러나 순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식물도 살아 있고, 생태계의 모든 순환은 살아남기 위한 타자의 소멸을 전제로 한다. 살생을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도덕적 허상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순수는 실현 가능한 윤리가 아니라, 인간이 죄책감을 견디기 위해 발명한 신화다.



위선은 인간의 조건이다

육식주의자는 폭력을 미화하고, 비건은 폭력을 부정한다. 둘 다 폭력의 구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먹느냐, 마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그 행위가 가진 본질을 인식하느냐이다. 모든 생존은 타자의 소멸 위에 세워진다. 따라서 완전한 윤리적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위선은 단순한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명한 방어기제다. 우리는 폭력 없이 살 수 없고, 폭력을 인정한 채로는 살아갈 수 없다.



윤리의 시작 — 폭력을 인정하는 정직

진짜 윤리는 폭력을 부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누군가의 생명을 대신 소비하고 있음을 알고, 그 불가피한 사실을 미화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용기. 그건 냉혹한 무관심이 아니라, 존재의 연쇄에 대한 자각의 겸허함이다. 폭력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인간은 도덕적 구원이 아니라 존재적 정직함에 도달한다.



순수의 종말 이후의 인간

순수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폭력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종, 즉 윤리적 위선이 아닌 정직한 인간이다. 인간은 더 이상 깨끗할 수 없다. 그러나 정직해질 수는 있다. 그 인식이야말로, 우생학 이후의 인간이 지녀야 할 마지막 남은 윤리의 형태다.




#생각번호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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