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의 신뢰감 회로
나는 늘 착한 척하는 사람보다 그냥 무심한 사람이 더 편했다. 누군가는 그걸 냉소라고 부르지만, 나에게는 그게 안정이었다. CPTSD를 겪은 이후, 나는 “다정함”을 믿지 못했다. 너무 다정한 말 뒤에는 늘 다른 표정이 숨어 있었고, 따뜻한 태도 뒤에는 언제 폭력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이유 없이 불안했다.
무관심하거나 무신경한 사람은 감정의 폭이 좁고, 예측이 가능하다. 그들은 나를 위로하지도, 갑자기 상처 주지도 않는다. 그 단순한 일관성 자체가 신경계에는 안정 신호가 된다. CPTSD를 겪은 사람의 뇌는 ‘변덕’과 ‘감정의 과잉’을 위험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오히려 무신경한 사람이 “감정적으로 일관된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차갑지만 안전한 사람. 그게 CPTSD의 신뢰 회로가 선호하는 인간형이다.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가식적인 친절은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다. 그건 배신의 전조로 감지된다. 과거에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며 상처를 받았던 경험, “가족이니까 이해하자”라는 말 뒤의 폭력. 이런 경험은 뇌 속에서 ‘위선 = 위험’이라는 연결로 각인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다정함보다 그 다정함의 지속 가능성을 먼저 본다. 말보다 패턴, 감정보다 일관성.
내가 원하는 건 ‘착한 사람’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사람이다. 기분이 나쁘면 표정이 변하고, 화가 나면 솔직히 말하고, 도와줄 수 없으면 그냥 “미안”이라고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오히려 더 정직하다. 그들의 무관심은 냉정이 아니라 정직한 거리다. 그 거리감 안에서만 나는 나의 감정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무관심한 사람이 좋다는 건 인간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단지, 가짜 온기에 다시 데이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위선보다 무신경이 낫다는 건, 따뜻함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에게 신뢰는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정직함의 문제다.
#생각번호202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