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 이후의 윤리

이해를 넘어, 책임으로

by 민진성 mola mola

자각이 면죄가 되는 사회

우리는 사과와 반성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폭력의 당사자, 학대의 가해자, 부당한 권력을 휘두른 이들조차 결국엔 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끝낸다. “그때는 몰랐어요.” 이 문장은 스스로를 성찰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책임의 감각을 희석시키는 선언이다. 자각은 고백의 형태를 띠지만, 그 고백이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윤리가 아니라 서사적 면죄가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는 말의 위선

아동학대를 저지른 부모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도 어렸고, 몰랐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이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폭력은 종종 폭력의 연쇄 속에서 태어나며, 그들도 누군가의 피해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이 그들의 책임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해쳤다는 말은 동기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 폭력이 남긴 상처를 복원하지는 못한다. 그 명분이 ‘이해’의 언어일 수는 있어도 ‘정당화’의 언어가 될 수는 없다.



위선은 반성의 부재가 아니라, 반성의 연극이다

진짜 위선은 사과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유려하게 사과하는 사람, 자신의 결함을 가장 정교하게 설명하는 사람에게서 더 자주 발견된다. 그들은 죄책감을 완화하기 위해 자각의 언어를 자기 방패로 사용한다. “나도 상처받은 사람이다.”, “나도 피해자였다.” 이 말이 윤리적으로 위험한 이유는, 그 문장이 고통의 구조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 고통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그건 더 이상 성찰이 아니라, 자기면제의 미학이다.



진짜 자각은 평화를 주지 않는다

진정한 자각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건 불면과 불안, 부끄러움과 침묵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진짜 자각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와 그 결과 사이의 괴리를 끝까지 감당하려는 결심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몰랐다”라는 말 뒤에는 “이제는 그 무지를 감당하겠다”라는 문장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 결심이 없다면, 그 자각은 윤리가 아니라 연출이다.



윤리는 설명이 아니라, 감당의 기술이다

도덕은 설명을 통해 완성되지 않는다. 윤리는 언제나 감당의 영역에 속한다. 폭력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그 폭력을 용서하는 건 다른 문제다. 진짜 윤리란 “왜”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왜”를 알면서도 그 결과를 함께 짊어지는 일이다. 이해는 인식의 시작이고, 감당은 윤리의 완성이다. 자각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순간, 그것은 다시 위선이 된다.




#생각번호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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