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믿는’ 게 아니라 ‘느끼는’ 몸

CPTSD에서도 공조절이 가능한 이유

by 민진성 mola mola

안전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 사람 착하잖아.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잖아.” 그래서 괜찮지 않겠냐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편해질 수 있지 않겠냐고. 하지만 내 몸은 말한다. “아니.” 안전은 이해로 도달하는 게 아니다. 안전은 몸이 느끼는 것이다.



메틸화가 바꾼 것은 ‘판단’이 아니라 ‘기본 감도’

트라우마 이후 내 몸은 위험을 먼저 감지하는 쪽으로 기본값이 바뀌었다. 이것이 후성유전, 메틸화가 만들어낸 변화다. 하지만 이것은 기능의 소멸이 아니다. 안전의 감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안전을 감지하려면 훨씬 강한 신호가 필요해진 것이다. 내 몸은 위험을 과장해서 듣는다. 그러나 동시에, 안전을 들을 수 있는 귀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신경계는 혼자 조절되지 않는다

우리는 감정을 스스로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은 태초부터 공조절을 기반으로 살아온 생명체다.

누군가의 호흡에 맞춰 내 호흡이 완만해지고

누군가의 목소리로 내 심박수가 느려지고

누군가의 눈빛으로 경계가 풀리고

우리는 서로의 신경계를 무의식적으로 조율하며 살아간다. 안전은 말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몸과 몸 사이에서 전달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 옆에서는 CPTSD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건 기적이 아니다. 그건 연애 감정 때문도 아니고, 의지도 아니고, 최면도 아니다. 그 순간, 내 몸이 안전 신호를 받은 것이다. 부교감신경이 작동하고, 과각성 모드가 해제되고, 숨이 깊어지고, 가슴이 열리고, 다리가 땅에 닿는 감각이 돌아온다. 내 몸은 여전히 안전해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고장난 적이 없었다

나는 단지 너무 오래, 혼자 버텼을 뿐이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서 경계만 남은 몸으로 살아남아야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떤 순간, 어떤 사람, 어떤 관계 안에서 내 몸은 다시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 이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연결될 수 있는 존재다. 회복은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남아 있는 능력이었다.




#생각번호202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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