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사람은 나를 살리고, 어떤 사람은 나를 비워버리는가
나는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내 이야기를 꺼냈는데 오히려 더 공허해질 때가 있다.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들었는데 왜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을 때가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똑같은 말인데 몸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그 차이는 관심이 있었는가, 없었는가가 아니었다. 조언을 하려 했는가, 그냥 들어줬는가의 차이도 아니었다. 더 미세하고, 더 깊고, 더 몸의 층위에 가까운 차이였다.
무신경한 사람의 태도는 이렇다. “그건 네 일이고, 나는 상관없어.”, “어 그래~”, “그 정도는 누구나 다 그래.”
말은 부드러울 수 있지만 정서적 접촉은 없다. 관계가 아니라 단절된 두 개의 섬처럼. 그 앞에서 나는 결국 혼자였다. 몸은 이런 신호를 받는다. 여기서는 연결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내가 사라져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숨이 깊어지지 않는다. 부교감신경은 켜지지 않는다. 몸은 계속 대기 모드, 경계 모드에 머무른다.
그 후배는 달랐다. 내가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아.”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은 그 문장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상처받지도 않았고, 의문을 품지도 않았고,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 있지.” 그 한 문장은 무신경함이 아니라 내가 그런 나로 있어도 괜찮다는 허용이었다. 여기서 몸은 이렇게 반응한다. 나는 대상화되지 않았다. 나는 문제화되지 않았다. 나는 고쳐야 할 존재가 아니다. 나는 그냥 '있어도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순간 숨이 내려온다.
수용은 대단한 이해나 공감이 아니다. 기교가 아니다. 심리학 용어를 아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그럴 수 있고, 나는 그걸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어.” 그 말은 머리에 주는 말이 아니라 신경계에 주는 말이다. 그 순간 내 몸은 다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생각번호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