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과 무신경의 차이

왜 어떤 사람은 나를 살리고, 어떤 사람은 나를 비워버리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누군가에게 말해도, 왜 더 외로워지는 순간이 있을까

나는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내 이야기를 꺼냈는데 오히려 더 공허해질 때가 있다.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들었는데 왜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을 때가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똑같은 말인데 몸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그 차이는 관심이 있었는가, 없었는가가 아니었다. 조언을 하려 했는가, 그냥 들어줬는가의 차이도 아니었다. 더 미세하고, 더 깊고, 더 몸의 층위에 가까운 차이였다.



무신경함은 나를 ‘보지 않는 상태’다

무신경한 사람의 태도는 이렇다. “그건 네 일이고, 나는 상관없어.”, “어 그래~”, “그 정도는 누구나 다 그래.”

말은 부드러울 수 있지만 정서적 접촉은 없다. 관계가 아니라 단절된 두 개의 섬처럼. 그 앞에서 나는 결국 혼자였다. 몸은 이런 신호를 받는다. 여기서는 연결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내가 사라져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숨이 깊어지지 않는다. 부교감신경은 켜지지 않는다. 몸은 계속 대기 모드, 경계 모드에 머무른다.



반면, ‘수용’은 나를 그대로 바라보는 행위다

그 후배는 달랐다. 내가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아.”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은 그 문장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상처받지도 않았고, 의문을 품지도 않았고,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 있지.” 그 한 문장은 무신경함이 아니라 내가 그런 나로 있어도 괜찮다는 허용이었다. 여기서 몸은 이렇게 반응한다. 나는 대상화되지 않았다. 나는 문제화되지 않았다. 나는 고쳐야 할 존재가 아니다. 나는 그냥 '있어도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순간 숨이 내려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를 비우고, 어떤 사람은 나를 살린다

수용은 대단한 이해나 공감이 아니다. 기교가 아니다. 심리학 용어를 아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그럴 수 있고, 나는 그걸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어.” 그 말은 머리에 주는 말이 아니라 신경계에 주는 말이다. 그 순간 내 몸은 다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생각번호20251110

이전 20화그 사람은 나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