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여진다는 감각이 신경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그건 내가 의도해서 선택한 성격이 아니라 몸이 그렇게 배워온 생존 방식이다. 내 증상을 말하면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반응한다. “그거 치료받아야 하지 않아?”, “이제는 좀 괜찮아져야 하지 않아?”, “과거는 과거야, 지금은 아니잖아.” 그 말은 선의를 담고 있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들린다. 너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부족해. 바뀌어야만 가치가 있어. 그래서 나는 입을 닫았다. 말하지 않는 편이 더 편해졌다.
어느 날, 아주 우연하게 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고, 사람들 속에서 숨이 어떻게 가빠지고, 나는 왜 인간을 쉽게 믿지 못하는지. 그 사람은 듣고 잠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냥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 있지.” 끝이었다. 공감하려 하지도, 설명하려 하지도, 해결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수용했다.
누군가는 받아들인다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는 말을 많은 이들은 이렇게 받아들인다.
“내가 신뢰받지 못했나?”
“왜 난 예외가 되지 못하는 거지?”
“내가 더 다가가야 하나?”
“내가 잘못한 게 있어?”
관계를 자기 해석의 장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그럴 수 있고,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있을 수 있는 그 거리감의 윤리가 있었다.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존중이었다. 나의 상처를 “문제”로 정의하지 않고, 바꿔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 내 경험을 내 경험 자체로 인정해 준 것. 그게 내 신경계에게 준 메시지는 분명했다. 여기는 긴장할 필요가 없다. 여기는 버티지 않아도 된다. 여기는 존재만 해도 된다. 그 순간 내 몸은 과각성에서 빠져나왔다. 숨이 깊어지고, 생각이 천천히 흘러가고,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우리는 흔히 “치유는 대화에서 온다”고 믿지만 그보다 먼저 오는 건 수용이다. “네가 그렇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인다.” 이 말의 형식은 많다. 때로는 고개를 젓지 않는 표정, 서두르지 않는 속도,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여유. 말은 없지만 몸은 안다. 인정된다는 감각은 신경계를 재구성한다.
그 사람은 나를 구원한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사람이다. 회복은 누군가가 나를 끌어올리는 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경계가 잠시 내려올 수 있는 순간에 일어난다. 그 사람은 그 틈을 만들어 준 사람. 나는 그 틈 안에서 내가 다시 숨을 쉬는 법을 배웠다.
#생각번호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