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좋은 사람’을 찾지 않는다

CPTSD 회복은 신뢰가 아니라 비위협에서 시작된다

by 민진성 mola mola

나는 한동안 ‘좋은 사람’을 찾아 헤맸다

다정한 사람, 자상한 사람, 말이 부드럽고 이해심 많은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하면 내가 언젠가는 편안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는 괜찮아질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다정함 앞에서조차 숨이 가빠졌다. 누군가가 내 마음에 다가오려고 하면 내 몸은 먼저 굳어버렸다. 나는 그게 이상했다. 왜 따뜻함이 나를 살리지 못했을까?



CPTSD에서 문제는 ‘사랑의 부재’가 아니다

사랑이 없어서 아픈 게 아니라, 사랑이 위협과 함께 주어졌던 경험이 오래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따뜻함은 때로 접근을 의미했고, 접근은 침투가 될 수 있었고, 침투는 위험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몸은 다정함을 “기쁨”이 아니라 경계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친절한 사람도, 세심한 사람도, 전문적인 사람도, 빠르게 다가오는 사람은 모두 위협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깨달았다

회복은 나를 감싸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침범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회복은 사랑이 아니라 비위협에서 시작된다. 안전은 “따뜻함”이 아니라 “밀도 없는 존재감”에서 생긴다. 조용함, 느린 호흡, 해석 없는 얼굴, 나를 바꾸려 하지 않는 태도. 그런 사람 곁에서 방어는 스스로 내려간다.



그리고 나는 이제 사람을 이렇게 고른다

나는 이제 나에게 감정을 쏟는 사람보다 내 감정 옆에 조용히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나를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보다 내 말을 그냥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나를 구하려는 사람보다 나를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믿게 하려는 사람보다 나를 위협으로 만들지 않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이제 ‘좋은 사람’을 찾지 않는다. 나는 위협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다.



이것은 기준의 축이 바뀌는 순간이다

내가 원하는 관계는 깊고 뜨거운 친밀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는 거리에서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관계다. 그 안정이 쌓이면 그제서야 비로소 친밀과 애정은 천천히, 자연스럽게 자란다. CPTSD의 회복은 사랑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방어가 내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환경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번호202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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