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과 아동학대,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한 질문

폭력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최근의 정신의학 연구들은 조현병을 더 이상 ‘선천적 뇌 질환’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유전적 취약성 위에 반복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특히 어린 시절 학대가 쌓일 때 조현병의 발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 쌓여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근거는 20개의 연구를 모은 한 메타분석이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여성의 42%,

남성의 28%가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경험했고,

남녀를 합쳐 절반 이상이 성적 혹은 신체적 학대를 겪었다.

숫자는 잔인할 만큼 명확하다. 조현병은 정신분열이라는 낡은 이름이 암시하던 ‘갑작스러운 발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신경계가 감당할 수 없는 삶이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묻지마 범죄’ 가해자들은 어땠을까?

한국에서도 조현병 환자가 일부 강력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뉴스는 반복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그들도 어릴 적 학대 피해자였을까?”, “그 가혹함이 폭력으로 되돌아온 걸까?” 놀랍게도,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는 공식 자료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 ‘묻지마 범죄 가해자’만 따로 분리해 그들의 어린 시절 환경을 분석한 연구는 사실상 부재하다. 우리가 아는 건 단 하나다. 조현병 환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폭력 범죄에 이른다는 것. 그리고 그 소수의 사례 뒤에는 유전, 학대, 빈곤, 사회적 고립, 치료 공백, 약물 문제 같은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즉, “조현병 → 폭력”이라는 간단한 화살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학대가 있었다 하더라도 “학대 → 조현병 → 묻지마 범죄”라는 단선 구조도 아니다. 대부분의 학대 피해자는 평생 자기 안의 상처를 견디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 폭력은 항상 더 좁고 복잡한 교차점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실

분명한 연구 결과가 하나 있다.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 중 반복적이고 심각한 아동기 스트레스(ACE)를 경험한 비율은 정상 인구보다 훨씬 높다. 특히 폭력적 사건까지 이어진 집단을 따로 떼어보면, 어린 시절의 학대·방임·정서적 결핍이 더 자주 발견된다. 이쯤 되면 누구나 묻게 된다. “그들의 삶은 언제부터 어긋났을까?”, “폭력은 정말 ‘선악의 문제’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우리는 가해와 피해를 구분할 때 종종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과 ‘선한 사람’을 전제한다. 그러나 정신의학·범죄심리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폭력은 악의에서 시작되기보다, 감정과 신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누군가는 상처를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누군가는 안전한 관계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고,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 결핍이 누군가에게는 병리로, 누군가에게는 불안과 고립으로, 아주 극히 일부에게만 폭력으로 나타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는 것은 ‘상처의 크기’가 아니다

아동학대를 겪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사람을 위험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경우, 상처를 겪은 사람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만큼 감수성이 예민하다. 그들을 구분하는 건 상처의 크기가 아니라 돌봄·사회적 자원·치료·관계의 유무다. 즉, 폭력을 결정하는 건 개인의 본성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리고 누가 그것을 붙잡아주었는지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묻게 되는 질문

폭력은 결코 한순간의 선택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그 이전에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학대,

해석되지 않은 상처,

고립,

치료의 공백,

사회적 실패,

이런 것들이 반복적으로 축적된다.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해왔는가? 누군가의 위험 신호를, 충분히 일찍 발견해본 적이 있는가? 가정 안에서, 학교 안에서, 지역사회 안에서 폭력의 씨앗이 뿌려지는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있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조현병이든, 트라우마든, 묻지마 범죄든 우리는 현상만 바라볼 뿐 원인을 건드리지 못한다.



폭력을 멈추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

폭력은 설명이 아니라 예방의 문제다. 그 예방은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어린 시절 학대·방임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는 것
– 안전한 보호자, 언어, 관계를 다시 제공하는 것.

정신질환이 조기에 치료되고 꾸준히 유지되도록 돕는 것
– 치료 공백, 사회적 고립, 빈곤을 함께 다루는 것.

우리는 ‘묻지마 범죄’를 보며 공포를 느끼지만, 실제로 더 무서운 건 ‘아무도 보지 못한 작은 상처’들이다. 폭력을 멈추는 길은 그 작은 상처를 충분히 이른 시점에 발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의 제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가족으로, 친구로, 사회 구성원으로— 서로의 삶을 조금 더 ‘보려고 하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생각번호20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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