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동권 체계의 가장 이상한 모순

가정 밖에서 키우는 나라, 왜 학대만 가정 안에서 해결하라고 할까

by 민진성 mola mola

한국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동에 대해서만 유독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부모는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어린이집에 맡기고, 태권도장에 맡기고, 학원에 맡기고, 방과후 프로그램에 맡긴다. 아이들은 하루 대부분을 가정 밖에서 보낸다. 이 시간 동안 아이를 돌보는 주체는 교사, 강사, 보육교사, 원장, 활동 지도사 등 사회 전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토록 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나라에서 정작 학대나 폭력이 발생하면 그 순간만큼은 갑자기 “가정의 문제”가 된다. 왜일까? 이 모순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한국은 양육을 ‘외주화’해놓고도

양육 권력은 여전히 부모에게 독점시킨다. 한국만큼 아이를 사회적 기관에 맡기는 나라가 드물다. 맞벌이는 당연하고, 아이 돌봄은 완전히 제도화됐으며, 사교육 시장은 세계 최대 규모다. 나라는 사실상 부모의 경제활동을 위해 아이 돌봄을 총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문제가 등장하면 국가는 발을 뺀다.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부모의 양육권을 존중해야 한다”

“가정 해체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이 말들은 양육을 사회가 떠맡고 있는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왜 양육은 사회화되는데 아동보호는 사유화될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은 양육의 ‘부담’만 사회화했고 양육의 ‘권력’은 부모에게 남겨둔 나라다. 이 구조가 아동학대 대응을 심각하게 뒤틀어놓았다.



한국의 보육정책은 ‘경제정책’

그러나 아동보호정책은 ‘인권정책’이다. 유럽 복지국가에서는 보육과 아동보호가 하나의 축에서 함께 성장했다. 아동을 독립된 시민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보육 확대: 부모의 노동력 확보를 위한 경제정책

아동보호: 가정에 대한 국가 개입이라 부담스러운 인권정책

즉, 보육은 국가의 필요, 아동보호는 국가의 부담. 이렇게 분리된 구조 속에서 아동학대 예방 인력은 늘 후순위가 된다. 경제는 국가의 관심사이지만 아동권은 여전히 선택 사항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가족주의는 양육 현실과 모순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가정 신성주의’를 아직 유지하고 있다.

부모 권력은 절대적

가정은 국가 개입의 금구역

훈육은 개인적 가치관

가정 문제는 사적 영역

문제는, 이 인식이 현실과 완벽하게 어긋난다는 점이다. 현실은 이렇다.

아이는 하루 10시간을 가정 밖에서 보낸다

보호·교육·안전·정서는 기관과 사회가 담당한다

부모는 실질적으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다

그러나 아이가 위험에 놓이는 순간 부모는 갑자기 “절대적 권리자”가 된다. 가정 신성주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아동 보호 정책을 뒤틀어 놓는다. 결국 피해자는 아동이다.



한국은 돌봄노동을 ‘부차적 노동’으로 취급한다

아동학대 예방을 담당하는 사람들— 아동보호전문요원, 사회복지사, 상담사, 심리사, 트라우마 전문가— 이 직군은 한국에서 가장 저평가된 노동 중 하나다.

높은 감정 소진

위험 상황 대응

엄청난 업무량

낮은 보수

이직률 급증

이 조건에서 전문 인력이 쌓일 수가 없다. 보육·교육은 사회 전체가 담당하면서도 정작 아동을 보호하는 노동은 ‘누군가가 그냥 헌신해야 하는 일’처럼 취급된다. 그 사회적 무심함이 아동학대 예방 체계를 비어 있게 만든다.




#생각번호20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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